또 다른 기다림

고민은 치열했으나 결과는

by 조유리

병원 차원에서 상의를 해 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던 원무과의 직원은 이틀 정도 기다려도 별 연락이 없다가 우리 쪽에서 다시 연락하자 '담당 의사와 다시 한번 상의하라'고만 했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병원 내부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의사, 간호사, 행정 담당 직원과 이야기해도 답이 안 나오자 오빠는 경찰서행을 택했다. 왜 그런지 몰라도, 환자 보호자가 병원에 CCTV를 요구할 직접적인 권한은 없다고 했다. 꼭 경찰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지역 관할 경찰서에 가서 사정을 말하자 형사는 간단하게라도 고소장을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이를 근거로 병원에 CCTV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소인은 직접 아버지를 돌보던 담당자인 간호사 A여야 했다. 내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던 이 사회초년생의 이름을 이런 문서에 올리는 것 자체로 나는 다시 한번 괴로워졌다. 어린 간호사가 이런 문서를 받아보면 얼마나 가슴이 떨리겠나. 누군가 '미안하면 고소 안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미안하면서 왜 지난 일을 들쑤시나'라고 묻는 것 같아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그럼에도 아직은 멈출 때가 아니라는 느낌이 더 괴로웠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고 결심했다. 'CCTV까지만 보자. 보고 나면 그 어떤 결과가 나타나든 고소를 취하하자. 병원 측 과실이 나타나면 오빠는 소송까지 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난 여기까지만 할거다. 난 그 어린 간호사가 한 일에 대해 절대 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오빠의 의견과는 배치될 수도 있는 이런 마음을 나는 단단히 먹으려고 애썼다. 적어도 나는 CCTV 영상을 확보하는 것에서 끝낼 것이다. 더 이상은 길게 갈, 힘도 없었다.


아버지가 아직 연명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형사는 부검을 권했다. 아무리 직업이 그렇다지만 어쩜 저렇게도 '부검'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싶어 나는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이야 말로 정말로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알고 싶다면 부검이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다른 방법을 통해 원인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거기까지 가게 될까? 그것이야말로 불확실한 건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는 정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이벤트'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다 되었다. 오빠와 내가 병원의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경찰서까지 다녀오는 동안 아버지는 계속 연명치료 중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붙잡아 두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엄마를 5일 동안 놓지 못했던 것도 무척이나 괴로웠기에 아버지는 훨씬 더 일찍 놓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한 번 생긴 의문을 풀지 못하고 보낼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진행한 일에 소득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다. 그리고 대상도 모를 그 무언가가 심하게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이 병원에 오기까지도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릴까'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버지가 제 숨을 잃은 다음까지도 모든 일이 순탄치 않았다. 왜 이럴까. 왜 아버지는 보내는 것마저 이렇게 힘들까. 나는 심란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경찰서에 고소장까지 제출한 후 다시 돌아온 토요일, 담당 레지던트는 아버지의 상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대로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투석치료를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미 뇌사 상태가 된 아버지에게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제 공은 경찰로 넘어갔을 뿐, 우리로서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저 빨리 보내드리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서 바로 '연명치료중단 동의서'를 작성할까 했건만 주말엔 불가능하다고 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회복지팀 직원과 면담 후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명치료 중인 환자를 떠나보내기 위한 절차가 엄마를 보냈던 B 병원과 비교해 꽤나 복잡한 것 같았다. 이런 것은 병원마다 좀 통일하면 안 되나, 나는 별의 별게 다 불만이었다.


경찰은 CCTV 확보까지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고 했고, 병원에선 또다시 이틀이 지나야 한다고 하니 우리는 무작정 때를 기다리는 허탈한 주말을 보내야 했다. 곧 장례를 치를 것 같다고, 엄마에 이어 아버지마저 그렇게 됐다고, 제가 못 지켜드려서 죄송하다고, 나는 그제야 울면서 친지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들 안타까워하면서도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고, 너 정도면 부모에게 할 만큼 했다며 위로들을 하셨다.


과연 그랬을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도 아버지를 외롭게 한 것 같은데, 나는 과연 '할 만큼 한' 자식이었을까. 그런 칭찬과 위로에 더욱 얼굴을 들지 못했다. 자식의 '할 만큼'이 과연 무엇인가 몰라도 지금 현재 자식 된 내 입장이 너무 괴롭고 후회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당장이라도 마주 앉아 나와 술잔도 기울이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눌 것 같이, 얼마 전까지 건강했던 아버지에 대해 친척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죽을 만큼 괴로웠다. 나는 지쳐가는 심신을 방 한 구석에 던지고는 조용히 흐느끼다, 잠들다, 몽유병 환자처럼 집안을 배회하다 다시 잠들곤 하며 가지 않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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