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질문 금지

by 조유리

"앉으세요. 우리에게 무슨 궁금하신 게 있으셔갖고."

수간호사의 첫인상과 말투가 솔직히 내 눈에 호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빠와 나는 담당 교수의 조언대로 주치의인 레지던트를 통해 호흡부전이 발생했던 시점에 아버지를 담당했던 간호사 A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간호 기록지에 그 '이벤트' 당시 담당 간호사가 A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는 우리가 교수를 만났던 화요일에는 간호사 A의 휴일이니 다음날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 지나 찾아간 중환자실 면담실에서 우리를 맞은 것은 간호사 A가 아닌 수간호사였다.


나와 오빠는 교수에게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 물론 의료진을 믿지만 보호자가 보지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 방문을 했다고. 그런데 혼자 나타난 이 수간호사, 왠지 모르게 말이 길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간호사가 담당하던 환자가 4~5명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두 세 명 밖에 안 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가 되었든 환자 모니터링은 다 하고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여기 있다 보면 뭐 스무 살짜리 환자도 갑자기 뇌사 상태에 빠져버리고 뭐 그런 거니까요, 안타깝긴 한데..."


이쯤 되면 '이 병원은 왜 의사나 간호사나 모두 두서없이 말하고 횡설수설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냐고 묻는 우리 앞에 왜 또 이 수간호사는 의미 없는 일반론을 얘기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저희가 24시간 모니터링을 하는데, 하다 보니까,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시고 동공반사가 열리신 거거든요..."


그녀가 드디어 아버지 증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우리는 좀 더 집중하며 추가 질문을 했다.


"그러면 혈압이 먼저 떨어지신 건가요?"

"예, 예, 혈압이..."

"그럼 산소포화도는...?"

"그러니까 혈압도 떨어지고 산소포화도도 다 같이 떨어져서 이제 저희가 주치의를 찾고 주치의가 바로 와서 다 확인하고 그다음에 혈압이 떨어지니까, 산소포화도도 떨어지고..."

스스로도 말이 빙글빙글 돌고 있음을 느꼈는지, 그녀는 화제를 바꿨다.

"저기, 간호 기록을 다 떼셨다고 들었거든요? 거기 보시는 대로, 그 기록대로 다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치의를 부른 거고 그 이후에 보호자 분들이 연락을 받은 거고요."

"그런데 거기 기록에 '석션 후'라고 되어 있어요. 석션 후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고요. 그렇다면 그 전 산소포화도는 정상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근데 저희가 산소포화도가 먼저 떨어졌다고 해서 그걸 하나하나 다 기록할 수는 없고요. 저희가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석션을 하기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끊었다.

"죄송합니다만 간호사님, 저희는 간호사님들의 통상적인 업무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 저희 아버지에 대한 팩트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호흡부전이 일어났던 시점 앞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물론 기억이 다 정확히 나실 순 없겠지만 그저 시간 순서별로 원래 아버지 상태가 어땠고, 석션을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서 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런 사건의 흐름이 알고 싶은 거예요. 그때 석션을 직접 하고 아버지를 담당했었던 간호사 A분을 만날 수는 없는 건가요?"

그녀는 갑자기 발끈했다.

"아니 왜 그분을 만나려고 하세요? 제가 보호자분 오시기 전에 그 간호사에게 다 얘기를 듣고 온 거예요. 저랑 말씀하시면 되죠."

간호사는 언성마저 높아졌다.

"수간호사님은 그 시간에 계셨나요?"

"아니요."

기가 막혔다. 처음부터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태도가 방어적이었던 그녀는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같았다. 그러면서 '원래 그러는 거다'라는 통념적인 말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뇌사 상태가 된 환자의 보호자가 무언가 질문하러 왔으니 긴장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지만 말투며 내용 자체가 황당의 연속이었다.

"간호사 A 분이 석션하신 것은 맞나요?"

"아니, 그게, 제가 잘.."

내가 그녀와 주로 대화하던 것을 옆에서 듣고만 있던 오빠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끼어들었다.

"아니, 수간호사님은 여기 왜 나오신 거예요? 그때 안 계셨고 상황을 모르시는 것 같으니까 그 당시 계셨던 분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잖아요."

수간호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지금 웃으시는 건가요? 웃음이 나오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제가 보호자님에게 그 간호사를 만나게 해 드릴 의무는 없어요."

"간호사님의 의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럼 수간호사님이라도 정확하게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셔야죠. 계속 통상적으로 이렇게 일한다는 얘기만 하시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기록을 떼셨잖아요. 그대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얘기가 반복되는데, 기록에는 석션 이전에는 산소포화도 얘기가 없고, 선셕 후 서든,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고 되어 있어요. 근데 지금 수간호사님은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석션을 했다고 하시잖아요. 말씀하시는 것과 기록이 달라요. 그럼 기록이 잘못된 건가요?"

"아뇨, 잘못은 아니에요. 기록이... 우리 간호사가 10년 차, 5년 차 되면 정확히 적었겠죠. 근데 그 간호사는 2년 차라..."

"그럼 2년 차라서 제대로 기록을 안 한 실수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건, 절대 실수는 아니죠. 근데요, 이렇게 보호자님이 오셔서 저희에게 하시는 경우는 없는데, 법무팀이나, 원무과에 찾아가셔야 할 것 같고요. 잠시만, 주치의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그때 감지했다. 이 수간호사는 '잘못'이라는 단어와 '실수'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을.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 단어를 먼저 말하는 순간,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되어 법적 다툼까지 갔을 때는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기록이 잘못된 것이고 간호사의 기록 실수라는 내용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잘못'은 아니고 '실수'는 아니라고 하니 대화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자꾸 다른 데로 돌리시죠? 그냥 한 가지만 정확히 물어볼게요. 수간호사님, 저희가 당시 있었던 일을 알고 싶으면 뭘 보면 되나요?"

"기록이죠."

"근데 지금 기록과 실제 내용이 다르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아뇨 그게 아니라."

"다시 한번 여쭤볼게요. 아버지 호흡 부전 때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먼저 동공이 열리시고, 그래서 주치의가 하라는 대로 했고, 인튜..."

"석션은요?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석션을 했다는 말씀이죠?"

"네"

"근데 그게 기록은 안 되어 있고요."

"네, 그렇죠. 근데, 지금 녹음하세요?"


아, 알았다. 대화 내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어 혼란스럽던 나는, 그녀가 묻는 이 질문에서 확실히 알았다. 그녀는 보호자의 심정에도, 원활한 일처리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혹시라도 자신의 입에서 병원에 불리한 내용이 흘러나오지는 않을지, 그리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을지에만 극도로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한 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로서 그 어떤 작은 책임이라도 지게 될까 봐 벌벌 떨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정말 실수가 있었다면, 대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또한 이런 상황에서, 조금 다르게 말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님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저희는 기록대로 잘했습니다. 정확한 정황은 이러저러하고요, 의심하시는 것도 이해되지만 저희는 해야 할 처치를 다 했으니 좀 믿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A 간호사는 2년 차 밖에 안되어서 긴장을 많이 하니 저랑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뭐 이런 식 말이다. 이런 걸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였을까? 제대로 내용도 모르면서 횡설수설하고 왜 이러시냐며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또 나중에 잘못을 지적할 때는 발끈까지 하는 것을 보니 상황이나 좀 들어보자며 별생각 없이 찾아간 우리야말로 정말 황당하고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오빠나 나나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평정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수간호사는 기록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긴 했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 이러지 말고 원무과에 가서 얘기해보라고 했다. 우리는 중환자실을 나와 원무과로 갔고 그쪽 직원은 병원 차원에서 다시 상의는 해보겠는데, CCTV를 보고 싶다면 경찰이나, '의료중재위원회'에 청원해보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젠틀하게' 말했다. 병원과 거기까지 대화를 나눈 우리는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뭐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냐?"

오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뭘 따진 것도 아니고,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본인이 먼저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이, 뭘 숨기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오빠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근데... 확신할 수는 없어. 유연한 대화나 상황 대처에 미숙한 성격인데 보호자가 뭘 물어보러 간다니까 잔뜩 긴장해서 방어적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근데 그 수간호사가..."

"응?"

"우리의 전투력을 상승시킨 건 분명해."

"훗, 그래. 맞다."


그랬다. 오빠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소송을 할 생각도, 아득바득 CCTV를 볼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 일에는 모든 순간의 기억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사건을 파헤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다. 기록상 우리가 의심 가는 부분이 제대로 소명이 된다면, 즉 실제 담당 간호사 A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시간 순서대로 설명만 들었다면, 그것도 아버지와 우리의 운명이었겠거니 하며 마음을 삭힐 생각이었다. 설령 그것이 A 간호사의 과실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수간호사의 황당한 태도를 맞닥뜨리고 나니 오히려 없던 전투력(?)이 생겨났다. 그녀가 우리를 도발한 것이다. 그저 설명을 해달라던 우리에게 '왜 그러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원래 환자들이란 갑자기 떠나기도 한다'라며 이상한 사람 취급한 것이었다.


"뭔가 해보긴 해야겠는데..."


처음 의료사고 얘기를 꺼낸 것은 오빠였고, 나는 과연 이런 의구심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며 소심하게 뒤따르던 것과는 반대로, 수간호사를 만나고 나서는 나부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환자 보호자를 상대하는 단순한 긴장감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의심 갈 만한 무언가가 있어서 그걸 숨기려고 그런 건진 몰라도, 그런 의문 자체를 풀기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무얼 해야 할까. 다음 절차는 무얼까. 오빠와 나는 방안을 생각하며 한 동안 공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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