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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Mar 05. 2021

그냥, 무작정 엄마가 보고 싶은 날도 있는거다

작년 초, 엄마, 아버지를 순차적으로 보내고 나서 둘 중 더 보고싶은 이를 꼽으라면, 솔직히, 단연 아버지였다. 


10년간 뇌질환, 그로 인해 악화된 치매를 앓은 엄마는, 이미 그 전의 정상이었던 모습에 대한 기억이 가물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도, '친정엄마'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신파적인 감정이 내겐 별로 없었다. 

애틋하고 보고싶은 그런 모습보다는 치매로 어린아이 같았던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보냈다는 죄책감만이 자리잡았을 뿐이다. 


반면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단연코 나의 가장 좋은 술친구였다. 아버지가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아버지와 소줏잔을 기울일 때가 가장 술맛이 좋았다. 요즘은 소주를 별로 안 먹는데 간혹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에, 마알간 소주를 한 잔 따를 기회가 생기면, 어김없이 나는 아버지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엄마가 유독 보고 싶었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무작정,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내가 "엄마, 이거 천천히 먹어야지." "엄마, 나훈아 노래 부를까?" "엄마, 이거 누구야? 사위야? 손녀야? 알아보겠어?" 이렇게 물을 때마다 천진한 얼굴로 아이처럼 대답하던 엄마의 모습을 한 번만, 딱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엄마는 아프기 전까지도 자식에게 반찬을 해먹이거나 손주들을 애틋하게 잘 봐주는 살가운 친정 엄마는 아니었다. 그저 가족들을 먹여살리느라 힘겨운 세월을 보냈고, 그 후에도 '너희 삶은 너희 삶, 내 삶은 내 삶'이라는 주의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며 자식에게 손 안 벌릴 노후를 보낼까 고민하던, 그냥저냥 현대적인 할머니였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의 정이 그리웠다. 자식과 부모의 역할이 바뀐 채 내가 오히려 엄마를 자식처럼 돌본 세월이 10년이 넘었는데도, 그렇게 내 자식같던 엄마인데도 그랬다. 오늘은 너무도 보고 싶었다. 


하늘이 맑았다. 모처럼 낮엔 더운 느낌마저 든 봄같은 날씨였다. 이런 날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요양원 관련 내용이나, 소송관련 내용처럼 내 최근 경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날이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이, 그저 그리운 날이 있는 거였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다. 사무치게.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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