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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Mar 09. 2021

합의는 없다

엄마를 떠나보낸 요양원을 상대로 한 형사 소송 고소장에는 '형법에 의한 과실치사'와 '노인복지법 위반'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소송 진행 중 구청 측에서 노인복지법 소송을 빼앗아갔다. 


빼앗아갔다는 말이 좀 우습긴 한데, 이는 내가 제기한 민원을 진행하던 중 벌어진 일이다. 

나는 소송과 동시에 요양원 관리감독 기관인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행정명령을 내려 요양원을 폐쇄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노인전문기관'이 내린 '방임학대' 판정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구청은 그 판정만으로 행정명령을 내리면 나중에 요양원에서 이의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 일단 고발을 하여 법의 판단을 받은 후 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구청이 노인복지법 위반으로 요양원을 고발했고, 경찰의 조정으로 우리는 고소장에서 노인복지법 관련 사항을 삭제하게 되었다. 


헌데 구청이 제기한 고발건에 대해 검찰은 요양원 대표에게 불기소 판단을 내렸다. 공식적인 불기소 사유까지 우리가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잘못은 대표가 아닌 요양보호사에게 있을 뿐이니 요양원 문을 닫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물론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은 요양보호사가 맞지만 이런 일에 대해 요양원 대표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양보호사를 제대로 교육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을 그 대표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꼬리 자르기' 식 수사가 벌어지는 것에 나는 분개했다. 


그러나 구청은 검찰의 불기소를 이유로 들어서 요양원에게 폐쇄가 아닌 '주의'조치만 하겠다고 나에게 통보해왔다. 




할 수 없지, 하며 손을 놓기에는 마음속 돌덩어리가 묵직했다. 사람을 죽인 요양원이 버젓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며칠 동안 생각을 하던 나는 '남이 안 해주면 내가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변호사와 상의했다. 우리의 '형법 위반' 고소에 더해 노인복지법으로 대표를 추가 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는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고발을 진행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변호사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요양원 대표 측 변호인이 합의 의사를 물어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워낙 단호히 '요양원의 폐쇄' '돈은 필요 없고 형벌 '을 노래 부르던 터라 변호사는 본인 선에서 알아서 합의 의사가 없음을 전했다고 했다. 그러고 전화를 끊어놓고서, 혹시 모를 나의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맞아요. 잘하셨어요." 

나는 답했다. 

"너무도 적은, 터무니없는 액수를 제시하더라고요." 

변호사는 그렇게 전하면서도, 아마 우리가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할 때를 대비해서 처음엔 적게 부른 걸 것이라고 말했다. 

"치, 그렇게 머리 안 써도 되는데. 그들이 얼마를 제시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정말 그랬다. 어차피 우리는 다른 생각이 없다. 끝까지 갈 거다. 


합의는 없다. 절대. 



https://brunch.co.kr/@atoi02/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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