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다

효, 도를 아십니까

by 조유리

“야, 오늘 어땠는 줄 아니?”


전화기 너머 아버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집 앞 밖에서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네 엄마가 바지를 내려 기저귀를 다 빼는 거야. 내가 동네 창피하게 왜 그러냐고, 그만하라고 하면서 네 엄마 등을 막 때리면서 못하게 했지만 막무가내야. 그냥 빨리 집에 오려고 휠체어를 밀고 막 달려 들어왔지 뭐냐. 도대체 네 엄마 왜 그러니? 왜 그러냐고!! 엉엉.”


엄마는 샘 방지용으로 몇 겹씩 덧대 입은 기저귀가 불편했었나 보다. 항상 엄마의 행동에 이유는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인지 능력이 떨어졌을 뿐이고 그것을 말로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것이다. 엄마가 걸린 병은 다름 아닌 ‘자기밖에 모르는 병’이다.


흔히 치매를 두고 ‘나보다 남이 힘든 병’이라고 한다. 환자 때문에 복장이 터지는 돌봄자와 달리 항상 멀뚱히 있는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세상 편해 보인다. 엄마를 돌보기 힘들어하던 우리 가족도 종종 말했다.

“엄마는 참 편하겠다. 아무것도 모르니.”


그런데 사실 그것도 아닌가 보다. 치매 환자는 뇌의 이상으로 여러 심리적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돌봄자가 자신을 해칠 거란 망상에 시달리고 환경이 바뀌면 불안함에 이상 행동을 보인다. 시력과 청력이 안 좋아지는 노화로 인한 치매는 그 증상 자체로 몹시 불안해지거나 초조해지기 때문에 이상 행동을 했을 때 질책하지 않고 괜찮다고 안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의 증상을 모른 척해주고 이해하며 보듬어 주는 부인의 모습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이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로 처음 마음을 먹고 얼마 뒤, 엄마의 10년 동안의 진료 기록을 뒤져봤다. 지난 기억이 가물거려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처음 엄마가 뇌경색으로 다리를 못 써 응급실로 갔을 때, 계단을 오르다가 뒤로 넘어져 뇌출혈이 생겼을 때, 그 사이 폐렴에 한 번 걸려 입원했을 때, 부실한 다리로 집 안 베란다에서 넘어져서 멍이 들고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그리고 떡을 먹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다가 입원했을 때…….


그간의 기록이 담긴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겨보다 문득, 내가 그동안 간과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항상 일이 일어나고 나면 엄마를 뺀 나머지 가족의 고충에만 신경을 썼다. 어떻게 시간을 배분해서 엄마를 돌볼지 일정을 짜는 데 바빴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넘어지고 다치고 숨이 막혔던 순간, 얼마나 큰 절체절명의 두려움을 느꼈을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마를 얼마나 강렬하게 휘감았을까. 치매로 상실된 언어능력 때문에, 아프다고 하소연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감정이란 것이 단 한 번도 스치지 않은 듯, 가장 메마른 언어로 적힌 진료 기록. 그 위에 쓰인 ‘낙상’ ‘호흡곤란’ 같은 단어의 나열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엄마의 아픔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를 돌보는 나 자신과 아버지, 오빠의 입장에만 집중하느라 전혀 보지 못했던 엄마의 고통.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아무것도 모른’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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