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도를 아십니까
아침에 밥을 먹으며 둘째 아이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어휴, 너무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유치원 나이로 돌아갔는데 모두들 나에게 다시는 6학년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는 거야. 왜 그러냐고, 왜 돌아갈 수 없냐고 막 따지면서 화내고 울다가 꿈에서 깼어. 어휴, 지금도 짜증 나, 에잉!”
꿈이 뭐길래. 꿈은 꿈일 뿐이라고 무시하고 아이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지만 나야말로 꿈에 자주 휘둘리는 사람이다. 안 좋은 꿈을 꿔도 무시하려 했지만 결국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많았다. 얼마 전 꿈에는 아주 유명한 배우가 나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복권 사야 하는 유명인 꿈’이라 하기에는 찜찜한 느낌이 많았는데 그날 난생처음으로 악플 세례를 받았다. 그 전날 글쓰기 플랫폼에 올린 영화평에 느낀 그대로 붙인 제목이 소위 ‘낚시질’을 했다며 혹평이 달린 건데 내 인생에 그렇게도 많은 비판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가슴이 벌렁거려 결국은 글을 내렸다.
엄마가 아픈 동안에도 꿈은 자주 나를 괴롭혔다. 꿈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 마치 예지몽처럼 그 며칠 후면 꼭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가슴이 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꿈속에서 우리 집에 와 있던 엄마가 갑자기 보조기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는 걸 내가 막았다.
“엄마, 어디 가려고?”
“응? 네 작은아버지가 오라네? 가야 할 것 같아.”
“작은아버지? 그 돌아가신 작은아버지? 엄마가 거길 왜 가? 빨리 들어와. 가지 마.”
“그런가? 가면 안 되나? 가지 말까 그럼?”
꿈속에서 내 질책을 받은 엄마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이상한 기분으로 잠을 깬 그 날, 지인 한 명이 부친의 부고를 알려왔다. 문득 꿈속에서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갔다면 부고의 대상이 달라졌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봤다.
한 번은 남편이 잠을 깨더니 갑자기 물었다.
“장모님은 괜찮으셔? 요양원에서 잘 지내시나?”
“갑자기 그건 왜 묻고 그래?”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 안부를 물으니 짜증이 나서 곱게 대답하지 못했는데 남편은 꿈을 꿔서 그런다고 했다. 엄마가 홀연히 나타나 옅은 미소를 띠고 앉아있었다고. 그런지 며칠 후 요양원에서 엄마가 적응을 잘 못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가장 끔찍하고 신날한 꿈은 쥐꿈이었다. 집 천장 위로 쥐가 득실거리고 집 안에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가로로 길게 누워있다가 내가 여러 번 나가라고 재촉한 뒤에야 무거운 몸을 들어 밖으로 나가버린 꿈. 하도 꿈이 생생하고 소름 끼쳐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는데 일은 다음 날 터졌다. 이른 아침 아버지가 연락이 와서는 전날 밤, 엄마가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혔다가 아버지가 응급 처치로 살려낸 뒤 병원으로 실려 왔다는 것이다. 나는 ‘꿈이 말한 게 이것이었나’라고 중얼거리며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갔다. 죽을 고비를 넘긴 엄마는 평안한 얼굴로 실실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엄마 목구멍에서 떡을 파내고 하인리히 요법으로 숨을 텄다는 자초지종을 나에게 들려주고 나자 옆에서 멍하니 듣고만 있던 엄마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죽게 놔두지.”
순간,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 쳐다보다가 피식, 헛웃음을 내뱉었다.
꿈이란 무의식과 억압의 결과라고 말한 프로이트. 그는 ‘실제 외부에서 가해진 자극이 꿈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수면 상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내 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엄마의 병환으로 인한 다양한 심적 혼란과 걱정이 내 잠을 깊이 침투하고 그 불안한 예감이 또 다른 현실이 되는 것의 반복. 꿈은 내 잠의 보호막이 아니라 내 깊은 불안을 선명하게 증명하는 인증사진일 뿐이었다.
“죽게 놔두지.”
저녁, 아버지를 집으로 보내고 잠든 엄마 곁에 홀로 앉아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은 치매 엄마가 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놓는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 말에 뜨끔, 놀랐을까. 몇 년 동안 이어진 엄마의 투병 생활로 온 가족이 지쳐있던 그때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오며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혹시라도 하면 안 되는 생각을 한 건 아닐까. 도무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꿈속의 득실거리던 쥐들이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 같았다. 집 안에 누워있던 그 음침한 얼굴을 한 사람을 내쫓지 않았다면 엄마에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보호자 침상에 몸을 누이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오늘 엄마가 떠났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면 어땠을까.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다.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지금 내 곁에 엄마가 누워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때서야 온몸에 힘이 풀린 나는 일부러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나는 혼자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고마워.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