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사절

효, 도를 아십니까

by 조유리

엄마와 아버지가 새벽 장사를 계속하던 시절의 어느 날, 우리 집에 ‘가정부’라는 분들이 번갈아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사 도우미’라는 전문성을 풍기는 말도 없었고 그분들이 서비스 교육을 받고 오실 리도 만무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뭔가 사정이 있어 딱히 가실 곳이 없는’ 분들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판 모르는 남과 같은 집에서 살았었는지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 날 가정부 아주머니가 새로 들어오셨는데 이후부터 이상하게 엄마가 사다 놓은 집 안의 간식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제 있던 과자가 어디로 갔지?'하는 궁금증이 며칠 동안 반복된 후 이제 우리 눈앞에서 대놓고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눈에 띠었다. 부엌이란 그분이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무언가를 먹고 있던 공간이었다. 아버지, 엄마의 얼굴에서 걱정이 가시지 않더니 며칠 후 그분은 우리 집을 떠났다.

또 다른 분은 집에서 내내 기도만 했다. 밥은 차리는 둥 마는 둥 하고 혼자 방에서 중얼중얼거리고 이상하고 희한한 소리를 냈다. 종교가 없던 부모님은 무슨 신인지도 모를 대상에게 기도를 계속하는 그분을 보며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님이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사라진 분도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큰마음먹고 장만했던 고급 카메라가 그분과 함께 없어졌다.


우리 가족과 1년 넘게 함께 지낸 좋은 아주머니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기억은 ‘남에게 우리 집의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한 적지 않은 불신을 심어주었고 누구보다 아버지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집에 남을 들이는 일은 질색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병세가 심해지자 낮에만 엄마를 돌봐 줄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봤는데 목욕은 안 해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해줄 수 없냐고 물어보면 방문 요양사를 신청하라고 했다. 하지만 가정부에 대한 기억이 있는 아버지에게 그건 용납 불가한 일이었다. 방문 요양사가 아픈 엄마와 아버지만 있는 집에 들어와서 잠시라도 함께 있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끔찍해하셨다. 어쩔 수 없이 힘에 부칠 아버지를 대신해 차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내가 자주 친정을 드나들며 엄마를 목욕시켰다.


솔직히 엄마를 씻기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내 살림하기도 바쁜데 시간을 내서 친정에 자주 와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시기 나는 매일 집에서 어린 두 아이들을 목욕시켰는데 이제 갓 아기 티를 벗고 쫑알거리는 아이들의 몸은 어찌나 포동 하고 예쁜 던지. 매일 그 모습을 보며 아이를 씻기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행복이 충전되었다.


그러다 친정에 가서 엄마의 몸을 씻기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르고 늙은 몸. 30여 년이나 어린 딸이 하라는 대로 고개를 숙이고 팔을 들어 올리는 무기력한 몸. 그 가슴 아픈 몸을 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던 나는 아이들에게 할 때와는 달리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엄마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하곤 했다.


‘하늘 같은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엄마의 몸 또한 예뻐 보여야 하지 않을까? 어떤 날은 ‘왜 나에게는 효심이 부족할까?’라는 자책으로 가슴이 짓눌렸다. 또 다른 날은 왜 나는 맛난 음식을 사드리고 함께 여행을 다니는 우아한 효도에만 머물면 안 되는지 한숨도 나왔다. 이런 생각이 과연 가져도 되는 심정인지 아니면 정말 자식으로서 하면 안 될 ‘몹쓸 생각’인지 판단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 무위로 돌아가면서 엄마를 목욕시키는 일은 점점 더 기계적이 되고 있었다. 엄마를 씻기는 신체적 노동보다 이런 마음속 혼란이 더욱더 큰 숙제 같아 친정에 오는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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