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엄마

사라져 간다

by 조유리

치매 엄마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음식을 줘도 그냥 아무 소리 없이 먹었고 뭔가를 물어봐도 좋다고만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모든 게 다 괜찮은 줄 알았다.

엄마의 다리를 고쳐보겠다고 먼 거리의 한의원에 다니던 때였다.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이번 주엔 내가 다음 주엔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치료를 받으러 다녀왔다. 두 달이면 벌떡 일어나 걷게 해 주겠다던 한의사의 말과 달리 시간이 흘러도 엄마의 다리 상태는 그대로였다. 아이 둘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남편과 내가 엄마의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다녀온 지 8주째 되던 날, ‘이번이 치료의 끝인데 엄마의 상태는 변함이 없네’라고 좌절하면서 집으로 향하던 그 날, 그 날은 바람도 싸늘한 동짓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팥죽이나 먹고 가자며 길가 자그마한 죽 집에 들렀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죽집이 아니었다. 이런 곳이 더 맛있는 숨은 고수일 거라며 몸 불편한 엄마를 부축해 식당으로 들어가 팥죽을 먹고 돌아왔다.

“아버지! 저희 팥죽 먹고 왔어요!”

인사 대신 보고를 하며 집에 들어선 순간, 아버지의 대꾸를 들을 새도 없이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되게 맛없었어.”

흠칫 놀란 나는 엄마를 돌아봤다. 무덤덤한 엄마의 표정. 그 얼굴을 보자 엄마의 말이 더 진짜로 느껴져 진심으로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맛이 없었구나. 아무거나 주면 달려들 듯 먹어 치우던 엄마의 미각도 아직도 살아있구나. 난 그 후로 밥상 한 번을 차려도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온 가족이 펜션 여행을 갔던 날도 엄마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불멍’을 하고, 어린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춤도 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즐거울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자꾸 화장실에 갔고 나는 그런 엄마를 부축해서 왔다 갔다 하느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새벽에도 수시로 화장실에 갈 엄마를 위해 나는 엄마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로 했고, 나의 ‘껌딱지’인 두 딸들 역시 같은 방에 잠자리를 폈다. 그런데 다 같이 잠이 들려고 할 무렵, 갑자기 큰 아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평소보다 많이 먹긴 했지만 이상한 음식은 없었는데 왜 그런지 알 길이 없었다. 나의 화장실 수발은 엄마에게서 아이로 이어졌다. 아이는 몇 번을 더 화장실에 드나들었고 나는 그 뒤를 쫓아 등도 두드려주고 입도 닦아주었다. 등 뒤에서 뭔가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이미 침대에 누운 엄마는 잠들지 않고 나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아이까지 다 재우고 뒷정리를 한 뒤 나 또한 잠을 청하려던 순간, 엄마가 입을 열었다.

“네가 참, 힘들겠다.”

가슴이 ‘쿵’. 아, 치매 엄마도 자식은 안쓰러운 것인가? 정작 당신 때문에 고생하던 딸의 모습에는 무심하다가 손녀 때문에 고생하는 딸의 모습은 눈에 들어왔나 보다. 그리고 애틋했나 보다. 아이를 낳은 딸의 육아를 도와주며 ‘나는 네 자식보다 내 자식이 더 안쓰럽다’라고 하는 친정엄마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을까?

“에구, 우리 엄마가, 딸내미가 안쓰러워요? 에고 고마워라. 근데 안 그래도 돼요, 나 괜찮아. 어서 자요. 하하”

나는 순간 울컥했다가, ‘나를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엄만데, 그건 모르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것 같아 그만, 헛웃음으로 무마해버렸다.

<치매 부모를 이해하는 14가지 방법>이란 책은 치매 노인의 여러 특성을 설명한다. 그 모든 특성을 종합해보면 바로 노인이 일생을 살며 내적으로 쌓아온 인간으로서의 본성이 다 드러난다. 폭력성, 집착, 조급함, 충동성,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 이 모든 것은 그동안 병에 걸리기 전에는 억누르며 살아온 그 사람의 본성들이다. 그렇게 숨어있던 본성이 이제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개하듯 발휘되는 것, 그것이 바로 치매의 이상 행동인 것 같았다. (의학적 검증을 받고 하는 말은 아니다)

엄마에게서도 그런 게 느껴졌다. 휴지를 모으는 걸 보면 엄마는 극도로 절약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물건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결벽증을 보면 엄마는 그만큼 깔끔한 사람이었다. 가끔 말하는 음식에 대한 냉철한 평을 들으면 음식 맛에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다. 딸에게 힘들겠다고 툭, 말하는 걸 보면 그만큼 자식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날 것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면서 어쩌면 엄마는 살아온 인생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예전의 엄마는 사라졌지만 우리 곁에, 진짜 엄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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