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사라져 간다

by 조유리

You are what you eat.


잡지에서인가, 이 문장을 처음 접하고는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잘 조절해서 먹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이 문장이 이상하게 내게는 빈부로 나뉜 이 사회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문장이라 느껴졌다. 좋은 집, 좋은 차만큼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에 따라 음식을 선택할 여유를 가진다. 먹는 음식의 종류와 가격, 그리고 그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이 문장을 해석하니 문득 현실에 대한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본격적인 치매가 오고 나서 엄마는 눈에 보이는 음식에는 무조건 손을 갖다 대는 식탐 증세가 생겼다. 식구가 모여 식사할 때면 상에 음식이 다 차려지기도 전에 날렵하게 손을 뻗어 보이는 대로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갔다. 음식이 뜨거워도, 양념이 손에 묻어도 상관없었고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은 후에도 계속 먹으려 했다. 음식이 남는 걸 엄마는 참지 못했다.

“냉장고에서 생고기를 꺼내서 먹는 시아버지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는 며느님도 있었어요. 식탐은 굉장히 흔한 치매의 한 증상이지요.”

의사는 특별할 것 없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엄마의 식탐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음식에 대한 엄마의 태도가 무언가를 대변한다고 느껴졌다.

아버지는 40년생, 엄마는 48년생이었다. 형제도 많았던 두 분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가난을 몸소 체험했다. 두 분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얼마나 소중했을지 그리고 다행히도 어느 정도 돈을 벌어 자식에게 음식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어른이 되며 서서히 이해해 갔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라는 문장을 내가 느낀 사회적 의미로 해석해본다면 그리고 그 기준으로 우리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따져본다면 그리 미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난 어린 시절 매 끼니를 충분히 먹고 자랐고 가족의 가장 큰 지출이 식비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을 경험한 부모는 자식에게 넉넉한 만찬을 차려 줄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음식 남기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겼다. 우리에게도 항상 그걸 강조했고 부모님이 나이 들어서도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치매 후 선명하게 드러난 엄마의 식탐은 사실 치매로 인한 이상 증세가 아니라, 평생 온몸에 배어있던 음식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이성을 모두 걷어낸 다음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그래서 엄마의 식탐을 보며 엄마의 어린 시절을 연민했다. 눈에 보일 때 먹어야 하는 불안감. 쌀 한 톨이라도 남겼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점철되었을 엄마의 어린 시절을. 엄마의 허기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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