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잔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유리 Aug 28. 2021

힘 빼고 엄마 노릇

여름 방학 내내 아이들과 집안에만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하루 날을 잡아 나들이를 다녀왔다. 평소 나들이나 여행을 할 때는 계획을 철저히, 열심히 는 편인데 이번엔 만사가 귀찮아 그냥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그저 눈앞에서 찰랑이는 물을 보고 싶어 선택한 곳.

가평이나 강원도처럼 레포츠의 성지에만 있는 줄 알았던 수상 레포츠 체험장이 눈앞에 있었다.


'왜 굳이 돈 주고 스릴을?'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나는, 

놀이공원도 싫어하고 공포 영화도 못 보는 나는

달랑 구명조끼만 입고 손잡이 하나에 매달려 상상 이상의 속도로 내달리는 모터보트에 몸을 맡기며

"살려줘..."

를 되뇌었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 가족들은 재밌다는 듯 깔깔 웃어댔다. 바나나 보트, 웨이크 보드 등 다른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들이나 타든가.."

옷이 더 젖는 건 싫다며 아이들도 거절했다. 오리배 하나를 더 타고 레포츠를 마무리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다음엔 뭐해요?"

뭘 할지 잔뜩 기대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몰라, 엄마가 이번엔 계획을 별로 안 했어."

라고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의외의 한 마디.

"와, 좋다. 계획이 없다니 마음 되게 편하다!"


여행을 갈 때마다, 계획 짜는 데 별 도움을 안 주는 남편과 아직 어린아이들을 나 혼자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미리미리 코스를 짜고 열심히 일정을 계획하며 고군분투했던 것을 생각하면 허무할 지경인 그 한 마디. 하지만 이후 아이들은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했다. 아빠는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엄마는 잔디밭에 앉아 물구경이나 하는 사이 바닥에 쓱쓱 선을 그리고 사방치기를 하고 노는 아이들.


평소 계획을 잘 세워서 숙제랑 놀이 시간을 잘 구분해보라고 권했던 것조차 아이들에게는 구속이었던 걸까? 진정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 그게 얼마나 그리웠을지. 그리고 여행이나 나들이의 재미는 바로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을지.


집에 돌아오니 둘째마저 한 마디 한다.


"이번 나들이는 정말 좋았어.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자유롭게 놀다 온 거."


엄마 노릇에서는 때로 '열심히'가 역효과를 낼 때도 있다. 힘 빼고 엄마 노릇, 그게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첫째 보리 15세, 둘째 누리 13세, 어느 여름.




매거진의 이전글 구름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