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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8. 2024

쓰기로 단단해지는 어른이 되길

에필로그

‘감정 해소 & 자기 돌봄 글쓰기’를 주제로 1:1 수업을 하고 있다. 강사 플랫폼의 프로필을 보고 나를 콕 집어서 선택을 한 수강생이다. 평소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글도 써보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한다. 그 취지에 걸맞게 첫 시간부터 속 얘기를 꺼내며 글로 담아내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았다.


그랬던 수강생이 두 번째 만남에서는 한층 쾌활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평소 스트레스는 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 감정을 글로 잘 담아보자고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수강생이 내게 말을 꺼냈다.


“저, 이상한 거 소개하고 그런 사람 아닌데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에 옅은 긴장이 등줄기를 타고 사르르 흘렀다.


“아니, 제가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 중에 선생님이 너무 잘하실 것 같은 게 있어서요. 태블릿으로 하는 온라인 교육인데 상담 전화가 오면 학생들 대상으로 사용법 알려주고 그 서비스를 신청하도록 안내하는 거예요. 안내받은 학생이 결국 서비스에 가입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거고요. 진짜 이상한 것 아니에요.”


내 경계의 눈빛을 읽었는지 연신 ‘이상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녀의 설명인즉슨 사교육 인터넷 강의 서비스에 대해 전화로 잘 설명해 주어서 가입하도록 만드는 콜센터 직원 역할인 것 같았다.


“신학기를 준비하는 가을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최고 성수기거든요. 제가 작년에 이 일 두어 달 해서 5~6백만 원을 벌었어요. 근데 선생님이 조곤조곤 잘 설명해 주시는 것을 보니까 그런 일 정말 잘하실 것 같아서요. 제가 지원 링크 보내드릴까요?”


“헛, 5~6백이나요!”     


단 며칠 전 사교육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비판의 글을 쓰고 복지와 사회문제에 대한 사명감을 언급했던 것이 ‘5~6백’이라는 단어에 잠시, 암전 되듯 머릿 속에서 새까맣게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혼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십을 앞두고 자기 탐구의 글을 써 내려간 것은 나의 ‘자기 돌봄’과 ‘감정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나간 경험과 앞으로의 숙제를 정리하며 어떻게 오십 대를 맞을지 고민하던 불안이 많이 진정되었다. 엄마에 관한 첫 번째 책을 쓸 때도 그러했듯, 역시 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나는 믿는다.

    

글을 쓰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 호기심이 있고 세상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를 희망하지만 세상이 부여하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출 생각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런 성향은 앞으로 더 뚜렷해질 것이며 이런 나의 모습에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되리라는 것도.


글을 쓰기 전 내 안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다시 들추기 시작했으며 운동 삼아 시작한 줌바로 춤에 대한 예전의 흥을 되찾고 있다. 술은 줄이고 운동을 더 하고 있으며 남편과의 대화를 늘리며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고 있다. 사회 문제를 인식하는 만큼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고민하고 무엇보다,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오십 대에 글을 쓰는 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나, 사회를 바꿀 수 있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 이상의 쓰기를 먼 훗날이라도,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쓰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불안도 없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교육 아르바이트에 머릿속이 암전되었다가도 실소 끝에 다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임을 잊지 말리라’ 다짐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으로 버텨갈 힘이 내면에서 솟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오십 대이길 바란다. 버킷 리스트를 쭈욱 늘어놓고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하기보다 한 두 가지 실천을 우직하게 해 나가는 중년이길 바란다. 그런 실천이 조금씩 사회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진정한 어른으로 늙어가길 바란다.  

    

인생의 새로운 절반을 건축하는 순간에 거창한 착공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한 해 한 해처럼 무심하게 한 살을 더 먹고 싶진 않았다. 이 글은 나에게 요란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이후를 확실히 구분해 줄 조용한 표식이 되어 줄 것이다. 이 글 덕에 오십으로 입장하는 문 앞에 두려움이 아닌 확신과 설렘을 품고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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