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10살이 되었을 때 난 이제 아이들 키우고 다이어트로 몸도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찾아온 넷째가 반가울 리가 없었다.
출산 후에도 몇 시간, 아니 며칠 동안 아기가 예쁘지 않았다. 힘들게 또 낳은 아이를 예쁘게 바라보기 힘들 만큼 내 몸이 너무나도 아파있었고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산 50일 만에 일터로 복귀해야 했던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100일까지 남편이 키웠다. 난 일하는 게 더 좋았다. 많이 했잖아 육아. 할 만큼 했어.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남편에게 맡기고 하고 싶은 대로 내 일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역시 엄마는 나였다. 나는 엄마였다. 60일쯤 되었을까, 나를 보고 옹알이를 하고 미소 짓고 나와 교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행복했다. 모성애는 어쩔 수 없지. 그래 내가 네 엄마다. 방긋방긋 웃는 아가가 너무 예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을 놓고 아이만 보고 육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2018년 7월 태어난 아기 2019년 3월부터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그때 우리 아기 9개월 되었을 때였다.
3시까지 어린이집에 있고 그 후로 6시까지 돌봄 선생님이 돌봐주셨다. 국가에서 지원되는 아이 돌봄 선생님을 너무 좋은 분을 만났다.
우리 아파트 옆 동에 사시는 분이셨고, 우리 아가를 정말 사랑으로 잘 돌봐주셨다. 꾸준히 우리 아기를 돌봐주셨다.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어린이집 졸업식날이다.
아침에 등원하며 "선생님 오늘 현우 졸업식 맞죠?"라고 확인했다. 왜 였을까. 아쉬움 때문인가. 그냥 우리 아가 너무 빨리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돌봐주는 사람이 많아서 일까 자라는 게 금방인 것 같고 아쉽다.
오늘은 현우를 데리러 가는 길에 그냥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선생님들께 편지를 썼다.
9개월부터 44개월까지 무사히, 건강히, 안전하게 잘 돌봐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표현했다. 선물을 준비했다. 마음을 담아서.
다른 날과 다른 기분으로 하원 시간을 맞았다. 아이의 모든 짐이 담긴 가방을 건네 받으며 준비한 선물을 드리고 인사를 하며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이보다 선생님보다 엄마인 내가 가장 애틋한 건 무슨 이유일까?
아이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선생님께 인사하고,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주신다.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엄마 나 이제 친구랑 선생님이랑 못 만난데.."
집에 돌아와 짐 정리하는 나를 보며 아이가 말한다.
"응 이제 몇 밤 자고 새로운 유치원에 갈 거야. 새로운 친구들이랑, 선생님 만날 거야. 잘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