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언니 Jan 10. 2022

우리 아버지가 간암이셔

남편의 생일날 떠오르는 아버님 

"할 이야기가 있는데 저녁에 좀 만나줄 수 있어?"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던 남자 친구가 전화를 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연락이 안돼서 걱정하고 있었고,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다. 술 한잔 하자고 포장마차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많이 피곤해 보였고, 지쳐 보이는 까만 얼굴에 조금 슬픈 눈빛으로 소주잔에 한잔을 따르더니 내게도 한잔을 받으라고 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진지한 거지' 사실 감이 오지 않았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봉사할동 모임에서 만났다. 내가 오랫동안 해오던 봉사활동 단체에 같이 하던 오빠의 같은 회사 친한 동생이던 남편이 신입회원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처음엔 너무 숙기 없어 보이고 말도 없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호기심이 갔었다. 나는 누가 봐도 밝고 활발했는데 그 사람은 조금 어두워 보이기도 했다. 모임 마치고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나이를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술을 같이 한번 먹고 급 친해진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때 우리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기다렸다. 소주 한잔을 비워내고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버지 모시고 서울아산병원을 다녀오느라 정신도 없었고 상황이 전화받기도 곤란했다고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 들리지가 않았고, 서울아산 병원, 아버지... 그래서 왜?

아버지가 왜?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그날 알았다. 이 사람 얼굴이 왜 어두웠는지, 왜 그렇게 조용하고 숙기 없는 사람이어야 했는지 말이다. 


사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으셨고, 수술과 치료로 완치가 되었고 아버지가 다시 일터로 나가셨는데 그 후 딱 1년 만인 오늘 회사에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아서 병원에 가니 간암이 재발되었다고 했다. 고개를 떨구었다. 보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며, 내가 이런 상황인데 나를 계속 만날 수 있겠어?라고 묻는 그 사람에게 나는 빈 잔을 채워줬다. 그리고 따뜻한 국물 안주를 하나 더 시켰다. 


아버지는 다시 휴직을 내시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지치고 힘들 때 기대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우리 사이에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해 11월 우리는 상견례를 했고, 내년 가을쯤 결혼을 하면 좋겠다고 양가 부모님들과 이야기가 오갔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아버님이 결혼을 가을에서 봄으로 당기면 좋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11월 결혼계획이 3월로 앞당겨졌다. 아버님은 결혼을 서둘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우리는 연애 1년 만에 결혼식을 했다. 무더운 그해 여름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가 결혼하고 딱 6개월 만이었다. 우리가 가을에 결혼을 하면 우리 결혼식을 당신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버님은 아셨던 것 같다. 많이 슬펐다. 연애기간 그리고 결혼해서 6개월 그 순간까지 아버님은 내게 너무 좋은 분이셨다. 결혼식을 치르고 아버님은 급속히 악화되시고 암이 전이가 되어 기억도 점점 잃어가셨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님 곁을 지켰다. 직장 때문에 자주 못 보던 남편을 대신해서 어쩌면 아프신 모습은 내가 더 많이 함께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 생일날 미역국을 끓일 때면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난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고 하신 말씀 때문일까. 아버님 제가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버님 아들 생일입니다. 아버님 잘 계시죠? 

저희 잘 보고 계신거죠?  보고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한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