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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언니 Jan 13. 2022

보이스피싱 당하던 날

하루 종일 울었다. 

아무도 이런 사기범죄에 대해 모르던 때다. 내가 당하고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그 사건을 당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2006년쯤 인 것 같다. 3살, 2살 연년생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째가 아직 걷지 못할 때였으니 10개월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두 아이가 거실을 잔뜩 어질러 놓고 놀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았는데, 최영자 씨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다. 국민카드 이용대금이 연체되었다고 한다. 연체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한다. 한치의 의심을 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국민카드 이용자였기 때문이었다. 사용내역을 묻는다. 혹시 서울 어디에 있는 하이마트에서 냉장고를 산적이 없냐고 한다. 냉장고를 구매한 내역이 연체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충남 아산이었고 냉장고를 구입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최근에 혹시 신분증을 분실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있었다. 정말 내가 얼마 전에 신분증을 분실했고 재발행을 신청해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했더니 누군가 내 신분증을 도용해서 카드를 만들고 카드를 이용해서 제품을 구매한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너무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바보 같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사람과의 통화에 집중해서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자, 그 사람은 지금부터 자기가 안내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신분증을 도용당했으니 내 계좌에 있는 돈을 빼 갈 수 있으니 자기가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보내면 안전하게 보호해준다고 했다. 전화를 끊지 말고 가까운 은행 CD기로 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장난치고 울고 있어서 더 정신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작은애는 등에 업고 큰애는 유모차에 태워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 사람과 전화를 하면서 CD기로 향했다. 나가다가 아파트에 사는 다른 동생을 만났는데 나보고 어딜 그리 바쁘게 가냐고 물었다. 그때 그 동생한테라도 이런 일이 있다고 이야기했으면 전화를 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 나중에 이야기해!라고 말하고 나는 서둘러서 CD기로 향했었다. 사기라는 게 당하려면 그렇게 당하는 건가 보다고 했다. 그렇게 CD기로 가서 그 사람이 말하는 계좌번호를 눌렀다. 그렇게 내가 가진 모든 돈을 이체시키고 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누가 내 이름으로 카드를 만들어서 사용했데, 그래서 내 돈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고 해서 보냈어. 난 너무도 천진했고, 남편은 너 바보냐? 그거 사기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럴 리가 그 사람이 전화번호랑 이름까지 다 알려줬거든, 내가 전화해볼게. 남편 전화를 성급하게 끊고 적어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때부터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남편이 나왔고 급하게 국민은행으로 향했다. 그사이 내 돈은 모두 빼갔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도 찾을 수 없었고 그게 누구인지도 당연히 알 수도 없었다. 말도 안 돼! 내 돈 760만 원이었다. 수습을 할 수도 찾을 수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런 사기범들이 왜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 거야. 말할 수 없는 억울함으로 식음전폐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친정엄마가 집에 왔다. 내가 아이들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순간에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내게 전화하셔서, 혹시 남편 몰래 돈이 필요했냐고 물으셨다. 너무 화가 났지만,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똑똑한 네가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하냐고, 글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일을 이미 당했다. 그 당시 나는 연년생 육아에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고 그런 심신상태여서 였을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 사기꾼들에게 내 귀한 돈을 그렇게 보냈다는 것이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그 이후로 보이스 피싱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다양한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방법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어이없고 분 한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때의 경험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서 그랬다고 말하면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 잃어버린 내 돈만큼 시어머니가 통장을 채워주셨다. 바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그런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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