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자기 공방 만들기 (1편)
엄마는 음식을 잘하는 분이다. 요리를 맛있게 할 뿐 아니라 깔끔하고 예쁘게 하신다. 갈비찜을 할 때도 안에 들어가는 무나 당근의 모서리를 잘 빚은 도자기처럼 둥글게 깎아 모양을 살렸다. 내 밥을 차려 주실 때도 반찬통이 그대로 나올 땐 한 번도 없었다. 꼭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주셨다. 그러면서 자주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다혜야, 혼자 있을 때에도 예쁘고 정성스럽게 차려 먹어야 밖에 나가서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슬프게도 요리에 소질이 없었다. 노력은 해봤다. 요리를 배웠다. 학원에서 레시피는 물론 플레이팅 방법까지 알려줬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시험 문제 중에 하나인 고기완자 만드는 연습을 하다가 손가락 끝을 썰어서 내 살로 완자를 만들 뻔했다. 조리사 자격증 시험은 한방에 떨어졌다. 간장 한 스푼, 설탕 한 티스푼… 양념을 똑같이 넣어도 내 것은 항상 묘하게 맛이 없었다. 시험을 보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후련했다. 그렇다. 나는 요리 똥손이었다.
그 후로 도자기를 사기 시작했다. 화장발, 조명발보다도 무서운 게 식탁 위에서는 그릇발이라고... 내가 만든 엉성한 음식도 멋진 도자기 그릇에 담으니 포토샵을 한 것처럼 달라 보였다. 플레이팅도 따로 필요 없었다 담기만 하면 훌륭한 일품요리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예쁜 그릇이 정말 많았다. 반짝이는 그릇에 담아야 빛나는 음식, 광이 없는 그릇에 담아야 돋보이는 음식. 써보니 도자기가 그렇게 다양한 이유들이 다 있었다. 한참 사서 쓰다 보니 궁금해졌다.
그릇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될까? 나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화도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도예공방을 발견했다.
“오! 쉬는 날 가서 체험해봐야지~!”
그렇게 도자기 작업에 첫발을 들이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도예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촉감이 참 좋았다. 내가 다듬는 대로 바뀌는 흙의 모양이 신기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쌓았던 모래성은 놀다 보면 부스스 무너져 내렸는데 흙으로 쌓아 올린 도자기는 처음에 말랑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쌓을수록 단단해졌다. 조용히 집중하며 작업하는 동안 나도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손으로 하는 작업만 계속하다 보니(핸드빌딩: 판작업, 코일링), 도자기를 더 깊이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새로운 공방을 찾아가 물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첫째 날.
선생님이 숨 쉬듯 쉽게 시범을 보여주고 “자, 이렇게 하세요” 하고 일어나셨다.
‘어머머… 꿈에 그리던 그 순간이 왔네.’
드디어 물레 앞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흙을 미는데 모양이 바뀌질 않았다. ‘어라? 나는 왜 안 되지?’ 더 힘껏 밀었다. 흙이 태산 같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지… 선생님은 너무 쉽게 하셨는데….’ 얼굴이 터질 것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그대로였다. ‘와… 이거 완전 노동이네. 생각한 거랑 영 딴판이네.’ 영화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아름다운 물레작업 모습은 영화일 뿐이었다.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는데, 눈앞에 물레판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드디어 돌았구나.’
이상하게도 그 힘들었던 게 자꾸 생각났다. 몇 시간을 앉아서 흙과 씨름하고 왔더니 허리, 어깨, 팔 안 쑤신 곳이 없다.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상상했던 물레는 우아한 예술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아도 계속 잔상이 남는다. 물레판이 하염없이 돈다.
둘째 날.
눈앞을 떠나지 않았던 물레를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두 번째 앉아보는 거라고 벌써 좀 익숙하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손작업할 때와는 흙 만지는 느낌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 사이로 로션처럼 빠져나가는 부드러운 흙물을 얼굴에도 발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레는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보들보들~한 흙을 만지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아직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는 것도 잊고 온전히 물레 앞에 앉은 시간에 몰입했다.
몇 곳의 공방을 거치며 도자기를 배우는 게 8년 이상 지속됐다. 늘 텐션을 높게 유지해야 하는 ‘리포터’라는 직업은 다소 내성적인 내 성격에는 버거울 때가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업’의 특성이 좋기도 했지만, 스트레스일 경우도 있었다. 도자기 작업은 흙으로 하는 명상과도 같았다. 방송일 하며 널뛰는 감정 기복을 도예작업을 통해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못난 요리를 빛내주었던 도자기. 이제는 그 도자기를 내 손으로 직접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직접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 내가 만든 그릇이라 담을 때도 더 정성스레 담게 된다. 먹을 때도 더 꼭꼭 씹어 먹는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 주면 밖에 나가서도 사랑받겠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