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이방인인가
도시에서의 생활은 ‘인간’ 중심의 삶이었다. 농촌에 와보니 이곳엔 사람 말고도 많은 존재가 있었다.
“벌레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시골 가서 어떻게 살래?”
전원생활 하겠다는 나에게 엄마가 건넨 첫 마디였다. 모기도 못 잡는 내가 농촌에 가서 살겠다고 하니 엄마의 첫 번째 걱정은 나의 집도, 직업도 아닌 벌레였다.
시골엔 정말 벌레가 많았다. 마당도 밭도 녀석들의 천국이었다. 함께 살아보니 벌레는 발이 많을수록 공포스러웠다. 거미 다리 8개, 송충이 (가짜 다리 8개 포함) 대략 14개, 돈벌레 30개. 거미보다 송충이가, 송충이보다 돈벌레가 무서웠다. 그 많은 다리로 발발 발발 기어가는 걸 보는데, 몸에 닭살이 쭉 돋았다. 한 번은 엄지손톱만 한 돈벌레가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재물운을 가져다주는 벌레’라기에 생긴 건 징그러워도 잡지 않았다. 녀석이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30개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한 발 한 발 몸을 옮길 때마다 내 머리카락도 한 올 한 올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아… 떼돈을 가져다준대도 같이 살긴 어렵겠다.’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돈벌레로부터 나를 구원해 줄 든든한 두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그런데 웬걸. 냥이들은 사냥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외려 벌레가 자신들에게 와다다다 다가가자 수염을 휘날리며 잽싸게 달아났다. 우리 고양이들은 나를 닮아 벌레가 무서웠던 것이다. 구석에 몰린 돈벌레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다.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쟤가 뭘 잘 못했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작은 존재도 생명인데….’
결국 나도 고양이들도 녀석을 잡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딱히 재물운도 안 들어온 것 보면 돈벌레는 알아서 집 밖으로 잘 나간 것 같았다.
반면 무섭지 않은 생명도 있었다. 지렁이다. 농사를 짓다가 밭에서 종종 지렁이를 만났다. 부러울 정도로 매끈하고 촉촉한 피부, 연갈색의 우아한 빛깔. 밭을 일구다 지렁이가 나오면 오래 못 본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흙 속에서 뭘 그렇게 잘 먹었는지 오동통하게 살이 쪄 귀여웠다.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때도 있었는데, 비 그친 후였다. 땅 위에 나와 있는 지렁이를 보면 햇살에 타 죽을까 봐 걱정됐다. 재빨리 손으로 집어 흙이 축축한 나무 그늘 아래로 데려가 놓아줬다. 내가 그럴 때마다 남편은 징그럽다며 칠색 팔색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구해줘야 하지 않은가?
뱀도 가끔 봤다. 다리가 없는 보통 뱀은 두 번 정도 봤다. 대신 우리 집엔 도마뱀이 많았다. 네발이 따로 달려있어 머리 몸통 다리 꼬리 구분이 확실한 도마뱀. 길게 자라있는 잔디 숲을 헤치고 가다가 나에게 딱 걸리거나 집 외벽을 타고 오르다 나와 마주치면 그대로 얼음! 하고 굳었다. 빨리 도망치는 편이 나을 텐데 가다가 내 앞에서 왜 멈추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식… 행동이 귀엽네.’ 열 번 마주치면 열 번 다 그러는 걸 보고 그게 도마뱀의 습성인 걸 알게 되었다. 하는 짓이 귀엽다 생각하니 외모도 점점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검지 정도 되는 길쭉한 몸에 짧디짧은 다리. 쪼끄만 눈. 몸을 가로질러 나 있는 선까지. ‘시골에 오게 되니 도마뱀도 다 보고. 심지어 같이 살게 되고. 어유… 호강한다, 호강해.’
때로는 집으로 두꺼비가 놀러 오는 날도 있었다. 두꺼비의 첫인상이 좋진 않았다. 그런데 안면을 트고 보니 밝고 화사한 개구리와는 다르게 어둡고 고집스럽게 생긴 모습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까비’도 아니고 ‘꺼비’라는 그 묵직한 모음이 ‘꺼멓고 묵묵하게’ 생긴 두꺼비와 찰떡이었다. 한번은 두꺼비가 새끼를 업고 온 날이 있었다.
“오빠~ 저것 좀 봐~ 새끼를 업고 다니네. 와…모성애가 대단하다!”
큰 두꺼비가 작은 두꺼비를 업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중이었다. 뒷모습에서 고된 어미의 숙명이 느껴졌다. 자연의 섭리와 위대함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대문자 F의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동네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해드렸다. 내 얘기를 전해 들은 동네 언니의 말씀.
“그거? 엄마랑 새끼 아냐~ 수컷이랑 암컷이 짝짓기 하는 거야~
아래 있는 게 수컷이고, 위에 있는 게 암컷이야.”
내가 오기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많은 존재들. 내가 그들을 무섭고 낯설다고 하지만, 사실 여기에 이방인으로 들어온 건 나였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들의 영역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어우러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