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자기 공방 만들기 (2편)
“나 아무래도 집에 도자기 작업실을 만들어야겠어.”
공방에 나가서 작업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집에서도 도자기를 빚고 싶었다. 한 번 마음먹으면 실행은 초스피드. 돌다리 두드려 볼 시간이 어딨나. 한시가 급한데. 바로 컨테이너를 사러 갔다.
‘어이구. 컨테이너 파는 곳을 다 와보다니.’ 아파트 살 때는 생각도 못해보던 일이었다. 주택에 살면 일이 많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다. 매우 그렇다. 그게 단점이다. 하지만 ‘마당’이라는 공간에서 해볼 수 있는 게 많다는 장점도 있다. 덕분에 작업실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겠는가!
혼자 쓸 공간이라 클 필요가 없었다. 3m x 6m 컨테이너를 계약했다. 작업을 하기 위한 물레와 각종 기자재, 선반도 주문했다. 꽤 큰 지출이다. 짠순이가 웬일로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걸로 뭘 벌자는 것도 아닌데 일을 크게 벌였다.
컨테이너가 오는 날. 2톤에 가까울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운반은 사람이 아닌 카고로 했다. 그 커다랗고 무거운 컨테이너가 인형 뽑기 하듯 대롱대롱 매달려 마당에 올라오는데 갑자기 ‘쿵!’ 하고 떨어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다행히 기사님은 노련한 분이었다. 줄로 표시해 둔 자리에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주셨다.
‘우와~드디어 나에게도 작업실이 생겼네!’ 같은 소리를 하면서 낭만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할 일이 많다.
“기왕이면 예쁘게 쓰고 싶어! 내 작업실은 셀프 인테리어를 해보겠어!”
컨테이너는 어두운 회색 밖에 없었다. 잔디와 집 뒤 문수산도 초록이고, 집도 아이보리색인데 작업실만 칙칙했다. 그래서 외부와 내부를 환하게 흰색으로 칠하고 실내 바닥은 카페에 많이 한다는 ‘에폭시’를 시공하기로 했다. 방법은 물론 유튜브 선생님께 배웠다. '유튜브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몰라…'
페인트를 얼굴에 칠하는 건지 컨테이너에 칠하는 건지 모르겠다. 요령이 없으니 일이 서툴다. 그래도 즐겁다. 재밌다며 같이 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바닥 ‘에폭시’ 시공할 때 필요한 ‘시멘트’등의 재료를 사러 동네 철물점에 갔다. 지금은 친해진 ‘도’사장님께서 당시에는 우리가 영 어설퍼 보였는지 “자네가 에폭시를 할 줄이나 알아? 미장을 아냐고?” 물어보셨다. “네! 압니다! 배웠습니다!” 당당히 말했지만 너무나 어렵게 겨우겨우 완성했다. 그나마도 몇 년 썼더니 나중엔 금갔다. 하자였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니다. 약은 약사에게 에폭시는 인테리어 회사에게.)
나만의 느낌을 담아 보겠다며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커튼 봉처럼 썼다. 노끈을 묶어 정사각으로 자른 리넨을 걸었다. 해가 안쪽까지 깊게 들어올 때는 천을 내렸다가 해 질녘에는 나무에 말아 올려 노을을 즐기며 작업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작업실의 껌딱지로 살았다. 물레 작업은 흙을 같은 모양으로 빚고 깎는 걸 반복한다는 면에서는 마치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 보면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반복된 그 작업이 나는 전혀 따분하지 않았다. 하루가 어찌나 빨리 가는지 아쉬울 정도였다.
다섯평 남짓한 작은 작업실은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컨테이너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웠다. 전기료가 많이 나와 에어컨을 달 수 없었다. 선풍기로 여름을 견뎠다. 땀이 뚝뚝 떨어져 눈으로 들어가도 손에 묻은 흙 때문에 닦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컨테이너는 냉동고가 됐다. 차가운 물 때문에 손가락 끝이 갈라져 피가 났다. 그래도 작업하는 게 좋았다. 물레에 앉는 순간 흙이 나였고 나는 흙이 됐다. 도자기를 예쁘게 빚고 깎듯 내 마음의 모난 자리도 정성껏 빚고 깎았다.
욕심이 났다. 잘하고 싶었다. '도자기 공예 기능사' 국가 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면 할수록 도자기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고 진지해졌다.
'마당에 작업실 하나 둬야지~.'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그 공간에선 내 꿈이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