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시골 도자기 공방 만들기 (4편)

by 고다혜


"발작을 했어."

"누가?“

"자기가"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남편은 내가 촬영을 다녀온 그날 밤 자다가 온몸을 떨며 발작을 했다고 말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잘 자~.' 신랑에게 인사하고 눈 감은 거 말고는 다른 기억이 아무것도 없는데...내가 그랬다고...? 혀에 상처가 나서 아팠다. 발작을 하며 혀를 깨물었다고 했다. 복숭아뼈가 아렸다. 손등도 아팠다. 피부가 빨갛게 쓸려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무서웠다. 삼 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았다.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며칠 뒤 같은 증세가 또 나타났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 뒤에도. 의사에게 큰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다른 검사를 몇 가지 더 받았고 결국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물기 없는 행주를 쥐어짜듯 에너지를 닥닥 긁어 쓰며 살았다. 째깍째깍 넘어가는 시계의 시침 분침을 손으로 붙잡고 싶을 정도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프리랜서 리포터로 일하며 스케줄을 많이 잡을 때는 보름 이상 쉬지 못할 때도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서울에 도착한 늦은 밤 또 다른 방송을 촬영하기 위해 바로 지방으로 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곧바로 혼자 꼭두새벽부터 3시간씩 운전해서 가야 하는 축제도 피곤한 줄 모르고 가서 진행했다. 그러고도 쉬는 날엔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며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EBS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어제 보다 나은 내가 되겠다며 책을 보고 글을 썼다. 도자기를 만들고 마켓에 나가 판매했다. 제일 중요한 건강을 잃고 보니 ‘도대체 뭘 위해서... 지난 시간 왜 그렇게 나를 닦달하며 살아온 걸까.’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영어공부 훼방꾼


뇌전증이 흔한 병도 아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무 데서나 의식을 잃는 건 아닌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지난 모든 게 후회될 뿐이었다. '앞으로의 삶은 다르게 살자.' 다짐했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자. 하고 싶은걸 하되, 부족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잘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신랑이 나에게 늘 했던 말이 있었다.


"자기야 무리하지 마.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해."


남편 말을 잘 들었으면 자다가 떡이 생겼을 텐데……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내 나이 마흔. 제2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리포터에서 도예가로. 15년간 방송하며 '이만하면 됐다.' 조금의 후회도 없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일했다. 다시 한 대도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배를 탈 때는 선원의 마음으로 일했다. 정말 선원분들과 똑같이 일했다. 진정성 있는 인터뷰를 하려면 내가 먼저 매 순간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충분히, 열심히, 즐겁게, 더할 나위 없이, 할 만큼 다 했기 때문에.


제작진분들께 그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모두가 놀라셨다. 잘하고 있던 걸 왜 그만두냐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해 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시간을 주셨지만 내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고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방송과 뜨거운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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