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자기 공방 만들기 (3편)
10여 년간 만들었던 도자기는 내가 쓰고, 엄마 드리고, 친구 주고, 지인들에게 드렸다. 가지고 있는 작은 재주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게 좋았다. 그릇 잘 쓰고 있다며 인증 사진을 보내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 보람을 연료 삼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도예를 취미로 할 수 있었다.
친한 친구 두 명과 강화도로 놀러 간 날이었다. 옛날 시장 골목을 보러 간 건데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공예 플리마켓도 열리고 있었다. "우와~ 저기 예쁜 거 진짜 많다!" 안 그래도 텐션 높은 친구들이 예쁜 것까지 봐버렸다. 한껏 흥분한 채로 달려가서 "어머머~ 너무 멋지다."를 연발하며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을 구경했다. 나무, 도자기, 뜨개, 소반, 옷 등 탐나는 공예품들이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그곳을 관리하는 매니저님이 와서 작가님들과 마켓에 대해 친절하게 소개해 주셨다. 얘기를 다 들은 친구들이 나를 가리키며 '얘도 도자기 빚어요! 진짜 잘 만들어요!' 대화의 중심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어머, 이게 무슨 상황이람.' 생각지 못했던 흐름이어서 "어어~ 네에" 버벅대는데 매니저님이 '안 그래도 작가를 찾고 있었어요!'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가능하다면 당장 다음 주부터 가져와서 팔아도 된다고.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내 도자기를 팔게 됐다.
촬영이 없는 주말. 만들어 놓은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리포터인데, 평생 말하는 일로 먹고살았는데 물건을 판다고 생각하니 입도 뻥긋하기 어려웠다. "도자기 보고 가세요." 라거나 "사세요."라는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펼쳐 놓은 도자기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지나가다가 도자기를 보는 분이 계시면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이 한 개, 두 개 야금야금 팔리기 시작했다. '어머 세상에… 제가 만든 걸 돈 주고 사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ㅠㅠ.' 신기했다. 감격스러웠다. 황송했다. 취미로 도자기를 만들어 온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잘 팔렸다. 빨리 또 만들어야 했다. 방송 없는 날이면 전보다 더 작업실에 파묻혀 지냈다.
사랑하는 나의 일, 방송도 열심히 했다. 프리랜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내가 제일 오래 했던 프로그램은 <6시 내고향>. 그중에서도 선원들과 함께 배 타며 수산물을 소개하는 <수요일엔 수산물>이라는 코너는 6년간 진행했다. 뱃멀미가 심해 매번 멀미약을 먹고 배를 탔다. 약을 먹어도 멀미가 날 때는 촬영하지 않을 때 토하고 촬영할 때는 웃으며 인터뷰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고 그 일을 정말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노래도 만들었다. 제목은 <어두일미>. 삼치잡이 배를 탔던 날 멜로디와 가사가 떠올라서 작곡했다. 비늘 달린(?) 옷도 한 땀 한 땀 꿰매서 만들어 입고 뮤직비디오는 남편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음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성은 떨어진다. '수산물'을 사랑하는 마음만 담뿍 담아서 만들었다. 음반을 내고 <아침마당>에 나가서 라이브 할 기회가 있었다. 가사가 이어질수록 '음정이 맞지 않는데... 생방송 사고 수준인데...' 란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산물'을 사랑하는 마음만 담뿍 담아서 최선을 다해 불렀다.
배를 타면서 광어 우럭은 기본이고 고등어, 전어, 복어, 민어, 방어 안 잡아 본 생선이 없다.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는 갑오징어와 관련이 있다. 갑오징어는 새의 부리 같은 모양의 까맣고 강한 이빨을 갖고 있다. 한 번은 갑오징어를 들고 카메라에 보여주며 특징을 설명하다가 갑오징어한테 물렸다. 손가락 끝 살점이 뜯겨 피가 뚝뚝 나는데 아프고 서러워서 내 눈물도 뚝뚝. 그게 짤영상으로 가끔씩 SNS에 뜬다. (시청자가 즐거울 수만 있다면 내 살점 쯤이야^^*ㅎㅎ)
리포터가 되고 나서 엄마가 나에게 가끔 한 말이 있다.
"얼마나 좋은 직업이야~ 돈 벌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데 다니고~!"
맞다. 동해, 서해, 남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 잔뜩 먹고, 세상 구경 많이 했다. 돈도 열심히 재미있게 벌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짓는 미소 뒤에는 치열한 현실이 있었다. 일단 배를 탄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어선은 유람선과 다르다. 승차감이 좋지 않다. 파도가 심한 날엔 배 위에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출렁이는 파도 때문에 하늘이 보였다가 바다가 보였다가... '죽기 전에 엄마한테 먼저 전화해야 하나, 남편한테 먼저 전화해야 하나.' 핸드폰을 꼭 쥐고 고민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또 어판장 아침 경매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일찍 출항해야 하기 때문에 잠은 반납해야 했다. 오징어나 갈치 같은 야행성 어종은 전날 오후에 출발해서 밤샘 조업을 한다. 환한 낮이 까만 밤이 되고 다시 빛나는 아침에서 낮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촬영. 갈치 한 마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된 이후부터 뼈에 붙은 살도 쪽쪽 빨아먹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추위였다. 한 겨울 배를 타면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소용이 없었다. 배가 달리면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할퀴는 것 같았다. 영하 18도. 강원도에 빙어를 잡으러 갔는데 빙어가 올라오자마자 차마 ‘팔딱!’을 다 못 하고 ‘팔!’에서 얼었다. 살아서 팔딱이는 빙어를 찍어야 하는데 그 그림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콧물도 나오다가 얼었다. 뇌도 어는 기분이었다.
겨울이 제철인 생선 중에 '물메기'라는 어종이 있다. 생긴 건 특이한테 맑은 탕으로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끝내준다. 물메기 잡이는 일찍 나가기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잔다. 추운 데다가 잠까지 못 자니 더 힘든 날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벼랑에 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쓰러트리지 못하는 상대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자신하며 촬영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내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사고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