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자기 공방 만들기 (최종)
도자기 공방을 열기로 했다. ‘시내로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나는 역시 시골이 좋아. 논뷰, 산뷰, 조용한 곳 좋아하시는 분들은 찾아오실 거야.’ 나와 결이 맞는 분들은 분명 계실 거란 생각에 시골에 공방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가 났다. 집 작업실을 꾸몄던 전공(?)을 살려 이번에도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최소한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짐이 빠지고 난 자리를 보니 ‘최대한’의 공사가 될 것 같았다. 뜯겨나간 바닥, 지저분한 창문 프레임, 벽지 곳곳에 까맣게 피어오른 곰팡이, 몰딩을 뗀 곳에 단차가 나있는 벽. 간판이 있던 자리에 들뜨고 색이 바랜 나무판자들, 녹이 난 입구까지. ‘이제라도 업체에 맡길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내가 심란해 하고 있는 사이 이미 남편은 줄자를 들고 벽 사이즈를 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메오메 든든해라~’ 그 모습을 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해보자는 용기가 솟구쳤다.
벽과 천정에는 석고보드를 대고, 보드 사이에 퍼티를 발랐다. 이음새엔 메쉬망을 붙이고, 퍼티를 한 번 더 발라 틈을 충분히 메웠다. 바른 게 마르면 표면을 매끈하게 갈아낸 후에 전시할 도자기가 돋보일 수 있게 도화지처럼 하얀 페인트를 칠했다. 벽에 발랐던 퍼티를 갈아내는데 새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그와 같이 있으니 내리는 눈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조차도 예뻐 보였다. 다음은 바닥 차례. 자동 수평 모르타르를 치고, 프라이머를 발랐다. 패인 부분에 퍼티를 발라 채운 후 에폭시를 칠했다.
가벽을 만들 땐 친하게 지내는 동네 형부가 와서 도와주셨다. “이 정도면 부부가 부업으로 인테리어 공사하러 다녀도 되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놓은 걸 보고 형부가 칭찬해 주셨다. 어깨가 으쓱했다. 공방에서 쓸 싱크대, 테이블, 의자, 선반은 목공을 취미로 하고 있는 남편이 만들었다. 쉬는 날이면 틈틈이 가서 나무 만지는 걸 연습하더니 어느새 맥가이버가 다 돼 있었다.
그가 잠시 일을 쉬고 있을 때라 매일, 하루 종일 공사에 같이 매달릴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롤러랑 붓, 빗자루를 쥐고 있었더니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였다. 두 달 내내 입고 있었던 교복 같던 방호복과 방진마스크를 벗는데 그제야 확실히 느꼈다. 이건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쩌면 좋아~ 너무 늦게 깨달았지 뭐야~^^;;;……’
드디어 간판이 달렸다.
<집에 사는 그릇>
‘내가 만든 도자기가 많은 분들 집에 가서 그분들과 함께 살면서 행복을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여러 플리마켓에 다니며 만났던 단골손님들이 찾아와주셨다. 공방 오픈을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축하 선물도 사주고 그릇도 사주셨다. ‘내가 만든 도자기를 내 공방에서 파는 날이 오다니…’ 기분이 묘했다. 주로 김포, 강화에 계신 분들이 원데이 클래스 체험을 하러 예약하고 많이 찾아주셨다. 지나다가 전시된 도자기를 보고 “시골에 이런 갤러리가 있어요?” 하고 들어오시는 분도 있었다. 요즘은 서울에서 검색하고 찾아오셨다는 분들도 있다. 이곳 자연이 좋아서, 나와 마음이 맞아서 멀리서도 일부러 오시는 정규반 수강생분도 계시다. 아직도 매일 아침 눈뜨면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흙 빚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한 분이라도 더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다. 도자기와 함께 하며 내가 느꼈던 행복을 많은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도예 공방 <집에 사는 그릇>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