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선물과의 환상의 궁합
나는 손맛이 눈곱만큼도 없다. 요리를 못 하는 나에겐 싱싱한 식재료가 정말 중요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쌈 채소와 오이,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계절이 반가운 이유다.
아침은 차를 곁들여 가볍게 먹는다. 루꼴라, 케일을 따다가 방울토마토와 함께 썰고 드레싱을 뿌려 샐러드를 만든다. 냉장고에 있는 달걀을 하나 깨서 달달 볶다가 소금 한 꼬집 뿌리고 후추를 갈아 넣는다. 나무에서 자두 두 개 따서 벌레 먹은 귀퉁이는 칼로 도려내고 접시에 담는다. 식탁에 앉아 찻잎 우려내면 그걸로 아침 준비 끝. 음식 맛은 밭에서 막 딴 채소의 싱싱함이, 나무에서 갓 딴 과일의 신선함이 책임져 주리란 믿음이 있다.
요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리 방법도 최소한으로 한다. 직접 캔 양파를 채 썰어 새송이버섯과 함께 소금, 다진 마늘 조금 넣고 휘리릭 볶아 살캉한 식감이 살아있을 때 먹는다. 전날 뽑은 거라 양파가 다시 밭으로 걸어 들어갈 것처럼 싱싱하다. 고추장, 된장, 다진 마늘, 참기름 섞어서 쌈장을 만든다. 오이와 고추를 찍어 먹다 보면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매년 김장은 꼭 한다. 제대로 된 다른 반찬도 없는데 김치라도 떨어지면 밥상에 비상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배추는 직접 심어서, 수확해서, 절여서, 속을 만들어서 하기 때문에 1박 2일이 걸린다. 1년 중 큰 행사다. 김치 맛은 매년 다르다. 한 해는 먹을만하고 다음 해에는 짜다. 그래도 좋은 재료로 우리가 한 거니까 아껴서 먹는다. 남편은 매번 “너무 힘든데 내년에는 하지 말까?”라고 하지만 정작 제일 많이 먹는 건 본인이다. 안 익으면 안 익은 대로, 익으면 익은 대로, 시면 씻어서, 볶아서, 찌개로 해주는 대로 잘 먹는다. 김치 귀신이 따로 없다.
고구마 농사도 항상 짓는다. 5월에 심고 10월에 수확하는데 잘 보관하면 몇 달간 두고두고 좋은 식량이 된다. 거름이나 약을 안 주기 때문에 심고 캐면 끝이다. 이만큼 간단한 농사도 없다. 농땡이 치기 좋아하는 농부인 우리에게 딱이다. 상자에 넣어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이 올라온다. 생고구마를 과일처럼 깎아서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하얀 분에서 나오는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다. 고구마를 간편하게 먹고 싶을 때는 깍두기처럼 썰어서 밥할 때 같이 넣는다. 노오란 고구마 토핑이 올라간 쌀밥이다. 구수한 밥 한술, 달콤한 고구마 한 조각, 번갈아 가면서 먹는 재미가 있다. 소복소복 눈 내리는 날엔 벽난로 앞에 앉는다. 장작불이 꺼져 갈 때쯤 고구마를 나무 사이에 넣는다. 불이 살아있을 때 넣으면 겉만 홀랑 타고 속은 안 익기 때문이다. 적당할 때 고구마를 꺼낸다. 껍질을 까서 호호 불어 먹으면 쫀득하고, 꿀처럼 달다. 마침내 겨울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5월 하순에는 매실을 따서 청을 만든다. 이거야말로 요리 솜씨가 필요 없다. 매실과 설탕을 1:1로 섞어 병에 담으면 끝. 우리 나무에는 열매가 많지 않아 산 것과 함께 섞어서 담근다. 일을 편하게 하려고 씨와 과육을 분리하는 도구도 만들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작두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실을 가운데 두고 위에 있는 작두판을 아래로 누르면 매실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씨와 살이 분리되는 간단한 원리다. 이렇게 되면 과육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100일 정도 잘 숙성한 매실청은 상추 무침 할 때 넣고,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할 때 넣어준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다채롭지 않지만 언제든 단맛이 필요할 때가 생기면 쓴다.
또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이 있다. 배가 아플 때다. 배앓이를 할 때,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끓인 물에 매실청을 타서 마신다.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달달하고 뜨끈한 매실차가 들어가면 기분 탓인지, 정말 어떤 약효가 있는 것인지 복부 통증이 사라진다.
베이글에 발라 먹을 바질 페스토를 조금 만들기 위해 바질 모종을 두 개 심었었다. 하나만 샀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잘 자랄 줄 몰랐다. 화초처럼 클 줄 알았던 모종이 나무처럼 컸다. 잎이 너무 많이 달려 처치 곤란이었다. 이 많은 걸 어쩌지… 하다가 예전에 녹차 만드는 농가에 촬영 갔던 게 생각났다. 말린 잎을 큰 웍에 덖어 녹차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 만드는 원리는 같겠지.’ 바질잎을 따다가 얇게 썰어서 채반에 잘 펼친 후 말렸다. 손으로 비벼 가며 (이렇게 해야 잎에 상처가 나서 향이 더 잘 우러난다고 했던 것 같다) 프라이팬에 덖었다. 접시에 넓게 펴서 수분이 생기지 않게 식혔다.
예쁜 잔에 차 거름망을 넣고 바질 차를 두 스푼 넣었다.
“바스락바스락”
제법이다. 잘 마른 찻잎 소리가 났다. 물을 붓고 3분 정도 기다렸다. 풋풋한 풀 향기가 났다. “호로록~” 어머! 맛이 녹차와 비슷했다. “호로로록” 아! 두 번째에서야 은은한 바질 향이 났다. 바질은 식물 곁에만 가도 향이 강해서 차로 만들면 "바질~!!!" 하고 자기주장이 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찾아보니 숙면에도 도움이 되는 식물이라고 했다. 썰고 말리고 덖기만 하면 되니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매년 만들어서 저장해야겠다. 할 줄 아는 요리가 한 가지 늘었다.
신은 요리 바보에게 선물까지 내려주셨다. 입맛 까다롭지 않은 남편이다. 그는 너그러운 미각을 가졌다. 간이 맞지도 않은 내 음식조차 맛있다며 먹어줄 만큼. 환상의 궁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