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뚝뚝 화덕 만들기

솥뚜껑 삼겹살이고 뭐고...

by 고다혜

유튜브를 하고 있다.

매년 하는 김장인데 다시 김장철이 돌아오면 ‘작년에는 새우젓을 얼마나 넣었더라?’ 매년 심는 배추인데 ‘지난해엔 간격을 얼마나 벌리고 심었더라?’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내가 보기 위해서 시작했다. 다음 해에 같은 것을 하게 될 때 참고하려고. 또 우리가 시골에 와서 이런 것들을 했구나. 추억하기 위해서.


채널명은 <고프로의 전원생활백서> 반어법이다. 지금은 초 '하수' 지만 언젠가 전원생활의 프로가 되고 싶어서 고다혜의 '고'에 '프로'를 붙여서 지은 이름이다. 어설프지만 우리 나름대로 농사짓고, 마당에 울타리를 만들고, 동네 도랑으로 낚시 가는 일상을 담는다.


이번에 만들 콘텐츠는 <화덕 만들기>. 오래전부터 나는 가마솥을 꼭 갖고 싶었다. 육즙 팡팡 터지는 수육도 삶아 먹고, 보글보글 백숙도 해 먹고, 솥뚜껑에 지글지글 삼겹살도 구워 먹는 게 꿈이었다. 녹이 잘 슬고 관리하기 힘들다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바로 그 가마솥을 사려고 하는데 인터넷만 보고는 당최 사이즈가 체감되지 않았다. 그래서 솥을 만드는 경기도 화성의 주물 공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가마솥 나라에 초대된 키 작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큼직하고 두툼한 수백 개의 까만 솥이 크기별로 쌓여있었다. 직접 오길 잘했다. 막상 보니 우리가 사려고 했던 건 생각보다 작았다. 손님도 초대해서 함께 먹어야 하니 솥은 토종닭 3,4마리 정도 넣을 수 있을 만큼 큰 걸로 골랐다. '와… 진짜 샀네! 꿈에 그리고 그리던 가마솥!'


드디어 촬영 날. 평소처럼 나는 카메라 앞에 서고 남편은 카메라 뒤에서 나를 지켜본다. 이 채널의 주인공은 고프로. 야무지고 당당하게 화덕을 만들어 낼 장본인은 바로 '나'이니까.


촬영 시작!

머리에 입력한 '화덕 만드는 방법'을 입으로 먼저 읊어본다.

1. 장작 넣을 입구와 연기 빠져나갈 뒷문을 잘 확보하고 벽돌을 쌓아줍니다.

2. 가마솥을 얹고요.

3. 벽돌 틈을 황토로 메우고 가마솥과 벽돌도 떨어지지 않게 잘 붙여줍니다.


“굉장히 간단하죠? 얼마나 쉽고 간단한지 지금부터 제가 직접 보여드릴게요^^!”


벽돌을 쌓으려고 들었다. 어라? 내화 벽돌이라 그런지 같은 크기의 일반 벽돌보다 2배는 무겁다. "여러분~ 화덕 만드시려면 팔 힘을 기르셔야 해요~. 저는 알통이 있어서 이렇게 벽돌을 번쩍번쩍 잘 드는 거랍니다~." 카메라 뒤에서 남편이 웃고 있다. ‘고프로는 어떻게 쉴 새 없이 말을 그렇게 잘해?’ 가끔 나를 신기해하며 그가 하는 말이다. 너스레를 떨었지만 걱정이 밀려온다. 이 무거운 걸 수십 개 쌓아야 한다. 그래도 웃음을 연료 삼아 일해야지. '나는 할 수 있다. 아자!!!'


벽돌을 동그란 모양으로 엇갈리게 쌓아야 하는 미션. 하지만 단이 높아질수록 어렵다. 입구와 뒷문이 뚫려 있는 구조 때문이다. 지지할 만한 것을 가져와 양쪽에 받쳐놓고 벽돌을 계속 올린다. "와... 이거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저는~ 고프로잖아요^^?! 멋지게 해내겠습니다!." 그도 응원하는 눈치다. 요리 저리 손짓하며 다른 방법을 나에게 알려주려는 것 같다. 영상에 타고 들어가니 음성으로 할 순 없고 행동만 있는 대화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내 방식대로 해본다. 너무 무겁고… 힘들다... 급기야. 입구와 뒷문 쪽에 쌓았던 벽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의 자신감과 너스레와 긍정 위로 벽돌이 무너져 내렸다. 절망적이다. 남편이 인상을 찌푸린다. 답답한지 팔을 휘저으며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녹화를 한 번 끊었다.


“오빠, 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답답하네 진짜.”

“오빠가 직접 해봐. 이게 말처럼 쉽나. 카메라 두고 그냥 가. 그렇게 보고 있으면 내가 주눅 들어서 촬영을 못 해.”



다시 녹화를 시작했다. 벽돌은 쌓아도 쌓아도 쌓이지 않았다. 가라고 보냈던 남편은 언제 다시 왔는지 카메라 뒤에 와서 가자미 눈을 뜨고 있었다. 울컥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현실적으로 혼자서는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함께 벽돌을 쌓는 걸 완성하고 가마솥을 얹은 후 다시 한번 녹화를 끊었다.



자존심이 상해도 카메라 앞에서는 웃는 사람이 일류다.


“오빠, 이제 진짜 보고 있지 말고 저리 가. 내가 알아서 할게.”


이제 마지막 단계다. 포대를 찢어서 황토를 고무 대야에 넣고 함께 온 접착제와 볏짚도 넣는다. 적당량의 물을 붓는다. 근데 말이 쉽지 황토 한 포대가 20kg다. 손을 집어넣어 내용물을 여러 번 잘 섞는다. 팔이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다. 그것도 못하냐는 듯한 그의 짜증 섞인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몸도 힘들다. 습관적으로 멘트는 계속하고 있는데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웃고 있는지 울상인지. 이쯤 되니 '내가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나.'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긍정을 쥐어짠다. 어쨌든 영상은 잘 마무리해야 하니까.


황토로 벽돌 틈을 메우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애써 찾은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최대 복병이 다시 등장했다. 나를 쪼아 보는 남편의 눈빛이었다. 순간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거 못 한다는 게 그렇게 한심한 사람 취급받을 일인가. 그러는 자기가 직접 해보라지 얼마나 잘하나.


“솥뚜껑 삼겹살이고 뭐고, 백숙이고 뭐고… 나중에 주나 봐라. 나 혼자 다 먹을 거다.”


엉엉 울었다.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황토를 채 바르지 못한 벽돌을 적셨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미안하다며 안절부절 못 하는 남편에게 휴지를 건네받았다. 코 몇 번 시원하게 풀고 눈물 닦고 밝게 웃으며 촬영을 마무리했다. 나는 ‘고프로’ 이니까.


후일담이다. 그는 혼자 고군분투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다시 또 돌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본 가자미 눈빛은 뭐였을까...? 지금도 나는 남편이 내가 못 미덥고 화나서 자꾸 왔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 얻은 교훈 두 가지.

웬만해서

첫째, 부부끼리는 뭘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둘째, 부부끼리는 같이 일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우리 부부는 그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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