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보다 먼저 온 잡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by 고다혜


어릴 때부터 잡초가 좋았다. 비옥한 토양에서 적당한 바람과 딱 좋은 볕으로 관리해서 키운 화초보다. 잡초들이 견디며 살았을 거친 환경을 생각하면 그 질기고 꼿꼿한 생명력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빼앗는 빨갛고 노오란 화초들의 화려한 꽃보다는 수수하고 담백한 잡초의 꽃이 내 취향에 맞았다. 학교 가는 길, 단단한 아스팔트 사이에 기어이 피우고야 만 쌀알 같은 하얀 꽃잎, 삭막한 도로 위 쪽빛으로 빛나는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만날 때면 숨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뻤다.


시골에 와보니 잡초는 더 이상 숨은 보물을 찾듯 어렵게 발견해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뒷산 가득 흐드러지게, 옆 산 가득 뭉개 뭉개 넘치도록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름 잡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에서 꽤나 눈에 익혀둔 풀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난생처음 보는 들풀이 가득, 그야말로 잡초들의 왕국이었다.


이제 내 땅도 생겼겠다, 얼마나 좋은가? 완전 땡큐! 내 사랑 잡초를 뽑아다가 마당에 심기로 결정했다. 위치는 어디에? 집 짓고 얼마 안 돼 조경 업체에서 양탄자처럼 곱게 깔아주신 잔디 위에. 그래도 나는 완전 바보는 아니었다. 잡초가 다른 데로 옮겨갈까 봐 구획을 나눠서 심을 계획을 짰다. 나름 마당 디자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야심 찬 내 조경 계획을 들은 동네 삼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말렸다.


“남들은 뽑아다가 버리는 걸 너는 뽑아와서 심는다고? 아서라~ 그거 가져오는 순간 잔디는 초토화되는 거야! 잡초가 엄청나게 번진다고~!”


하지만 나는 잔디를 지키면서 잡초도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들이 남들에겐 뽑아다가 버리는 잡초지만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들풀이란 사실이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각기 다른 개성의 어여쁜 풀들. 거친 야생에서도 얼마든지 살아남는 삶의 지혜가 나는 좋았다.


잡초를 뽑아오기 위해서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근처 빈 땅에서 흔하디흔한 민들레와 자잘한 하얀색의 꽃잎이 귀여운 녀석을 한 움큼 뽑았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아주 신비롭게 생긴 풀이었다. 줄기는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고 잎은 소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집 마당으로 데리고 와 심어놓고 보니 그 진가가 더 빛을 발했는데 물을 주니 줄기가 어찌나 곧고 예쁘던지! 특히 아침마다 뾰족한 잎 끝에 반짝이는 이슬을 매단 모습은 마치 정교하게 세공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왼쪽부터 민들레, 쇠뜨기. 심은 첫날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취해있느라 몰랐다. 열심히 나눠놓은 구획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는 것을. 돈 주고 심은 잔디 곳곳에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들풀이 쫙 퍼졌다는 것을. 나는 완전 바보였다는 것을…. 삼촌 말이 현실이 되었다. 잔디가 초토화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심은 신비롭게 생긴 잡초는 ‘쇠뜨기’라는 풀이었다. 무려 4억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한 잡초. 공룡보다 오래 살았고. 대멸종도 견뎠다고…. 땅 속 줄기가 옆으로 길게 뻗어서 자라기 때문에 뽑아내도 계속 자란다고….

‘민들레’의 정체도 미리 알았다면 심지 않았을 것이다. 민들레 한 송이는 사실 300송이의 꽃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림잡아 30개 정도는 심었으니 내가 심은 민들레만 9,000송이쯤 되겠지.


봄보다 먼저 온 잡초. 올해도 잡초는 봄보다 먼저 마당에 내려앉아 봄을 기다린다.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에 연한 싹을 틔우고 이제 곧 갖가지 생명들이 깨어날 거라며 예고편을 보여준다.

‘누구를 탓하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심으면서 시작된 그 풀들과 나의 질긴 인연. 이번 생에서는 끝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마당에 앉아 잡초를 뽑는다. 가만히 앉아 풀들을 뽑다 보면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또 너구나.’ 며칠 전 마당에서 만난 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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