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해요
한 달 전의 오늘, 이 시간에 나는 바빴다. 그 당시에 무얼 했는지 기록이라도 해놓았느냐고? 아니, 하지만 알 수 있다. 나는 1월 15일의 2시에도 3시에도 바빴고, 꼭 15일이 아니라 다른 어느 날이라고 해도 바빴으니까. 아침 9시부터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보면 시간은 다음날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곤 했다.
나에게 물었다. 너는 왜 항상 바빠?
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서 좋기도 하지만, 그냥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좋다. 누군가는 일 중독이라고도 했으나, 일 중독이 술 중독이나 담배 중독보다 낫지 않냐며 자위하곤 했다.
한 달 후에도, 6개월 후에도, 1년 후에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겠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5년, 10년 후에도 그럴 수 있을진 망설여진다. 체력이 받쳐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꼭 생산성 있는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였다. 바쁘다고 후딱 라면을 끓여 먹고 책상에 앉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물이 끓기까지 3분, 익기까지 3분, 다 먹는데 10분. 16분이면 끝나는 점심식사는 왠지 일을 뺀 내 삶도 인스턴트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10분이면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에 그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요리한다는 게 경제학도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만찬의 끝은 결국 설겆이 아니던가. 그럼 또 한참 싱크대 앞에 서있어야 하기에.
하지만 여유를 갖자는 생각은 자연스레 식습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 위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이붓는 건 아닌지. 자주 매콤한 게 당기고, 그렇게 먹는 매운 음식은 '식사를 했다'라기 보다 '식욕을 채웠다'라는 표현에 더 들어맞았다.
이제 조금 심심하더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콤한 음식과 밀가루는 항상 먹고 싶지만, 일주일에 딱 한 번 식욕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로 했다. 일주일 중 한 번을 제외한 남은 20번의 식사는 밥과 고기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가끔 치킨, 그러니까 튀긴 고기를 뜯기도 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일을 줄이진 않았다. 새로 맡은 일들이 손에 익었고, 루틴화된 결과다.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디자인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일임했더니 시간은 배로 늘어났다. 그 덕에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또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 또한 배부르게 채우고 있다.
오늘도 집에서 일하는 중이다. 파자마 차림이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제목은 모르지만 잔잔한 재즈음악이 은은하게 나오고 있다. 책상 아래에 난로를 켜놓자 맹수는 그 자리에서 조랭이떡 모양으로 낮잠을 잔다. 아침에 내린 커피 한 잔은 이제 1/3 정도 남아있다. 이 커피를 다 마실 때쯤 오늘의 일도 끝날 거다.
그럼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무장을 한 후 자전거 페달을 세차게 밟으며 줌바댄스를 하러 가겠지. 돌아오는 길은 흠뻑 젖은 땀 때문에 조금 으슬으슬할테지만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면 개운한 마음이 들거다. 그럼 이제 침대로 올라가서 책을 읽으며 오늘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 뜨끈하게 보이차 한 잔 태워 마시면서 노곤노곤 말랑말랑한 몸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평온하다.
집에서 일하니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