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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Sep 09. 2020

빚쟁이가 되다

이틀만에 이천만원을 빌리다, 고마운 친구들

일이 벌어진 후 2주가량 발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대학 동기를 만났다. 친구는 내게 표정이 왜 그러냐며 무슨 일 있는지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얘기를 꺼내려고만 해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 일 없다고 했지만, 표정이 좋지 않은 나를 보고 친구가 얘기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줄게”

친구가 먼저 지하철을 타고, 나는 그 다음 지하철을 탔다. 이미 친구의 말에 마음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넋이 나간 듯 우리 집 이야기를 했다. 당장 이천만 원이란 큰돈이 필요한데, 내가 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이제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친구는, 친구들에게 백만 원씩만 빌리라고 했다. 그렇게 20명에게 빌리면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십만 원도 아니고 백만 원을 빌려주는 친구가 있을까? 있다고 해도 20명이나? 나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한 번 생각해봐. 나는 100만원 빌려줄 수 있어”     


집에 오는 길, 생각에 잠겼다.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보며 내게 그런 친구가 스무 명이나 있을까 세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 않나. 나는 찔러보기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몇 번이나 문자 내용을 썼다 지웠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우리 집 상황을 다 공개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문자 내용을 작성하고 여러 명한테 문자를 보냈다. 내 자존심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핸드폰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줄줄이 미안하다는 답장이 올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30분가량, 핸드폰이 아닌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이제 용기를 내야할 시간이다. 괜히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해서 친구를 잃는 것은 아닌지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문자함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네. 미안해. 얼마 빌려주면 돼?”

“얼마 빌려줘?”

“그래 빌려줄게. 얼마?”

“나 비상금 300만원 있어. 그거면 돼?”     


연락했던 모든 친구들이 내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친구들의 문자에 감격했다. 그동안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 힘든 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용기를 내어 몇 명의 친구들에게 더 연락했다.     


친구 20명에게 백만 원씩 빌리라던 친구가 백만 원을 보내줬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친구도 백만 원을 보냈다. 삼백만 원의 여유가 있다던 친구는 그 돈을 다 보내왔다. 1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적금을 빼고 삼백오십만 원을 빌려준 친구도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오백만 원을 빼서 빌려준 친구도 있었다. 몇 년 간 연락을 안 한 친구도, 그동안 연락 안 해서 미안하다며 칠십만 원을 빌려줬다. 취직을 늦게 하여 백 단위의 돈은 없다는 친구들이 몇 십만 원씩 보내왔다. 모자란 돈은 아르바이트하던 곳 사장님께서 채워주셨다. 여윳돈이 없던 사장님도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서 내게 빌려주셨다.      


내 통장에는 잔액 이천만 원이 찍혀있었다. 단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정을 자세히 얘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일이 있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만 말했다. 그런데도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것이다. 내게 돈을 빌려준 친구들은 20명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몇 십만 원씩 빌려준 친구들도 많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아직 취직을 안 한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 몇 십만 원이 큰돈이었음을 알기에 너무 고마웠다. 통장에 찍힌 입금자명을 보면서,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 은혜를 갚고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 꼭 몇 배로 도와주리라.

 

친구들 덕분에 급한 일을 해결했다. 얼마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에 의욕마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 친구가 제안을 하고, 그 친구의 말대로 하니 이렇게나 빨리 해결됐다. 나는 힘을 내기로 했다.      

누구나 한없이 땅으로 꺼지는듯한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돌을 던져도 세상에 기스 하나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더 이상 돌을 던지려는 노력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때부터는 시간 보내는 것이 고통이다. 내 존재가 의미가 있긴 한지 의문을 품는다. 무력감을 이겨내지 못할 때의 결론은 항상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의미가 없다'     


늪에서 허우적거리길 멈추고 침몰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침몰도 쉽지 않다. 아니, 쉬운게 하나 없다. 남들한테 쉬운 게 나한테는 모두 어렵기만 하다. 원망의 대상을 정하자니 너무 많아서, 대상조차 희미해진다. 분노 혹은 절망은 내 안에만 쌓인다. 나를 꺼내줄 사람은 없으며, 그렇기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귀찮기만 하다. 어차피 나는 혼자다. 그리고 세상은 어제와 그대로다.      


당시 나도 이런 우울함에 쌓여있었다. 이쪽을 꿰매면 저 쪽에서 실밥이 터졌다. 처음부터 그 솜들을 넣고 꿰매기에 버거운 천이었다. 다 뜯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어지럽혀진 솜들을 다시 주워야 할 사람은 나였다. 터지면 꿰매고 또 터지면 다시 꿰매길 반복할 때 친구들이 자신의 천 조각들을 내게 주었다. 그들이라고 여유 있던 건 아니다. 그저 내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받은 천 조각을 잇고 또 이었다. 한숨이라도 내쉴 여유가 생겼다. 내 천은 자주 꿰매느라 누더기가 될 뻔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떻게 보면 퀼트처럼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친한 친구들이라도 내 마음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나와 있을 때 한없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헤어지면 그들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내가 닫은 문을 두드려주고, 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여주고 가끔 먹을거리를 문 앞에 두고 갔다. 내가 열어주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나를 찾아줬다. 이제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안다.  

   

이제 상처를 극복하고 나서 나도 가끔 그 친구들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같이 울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마음 깊이 그의 입장이 전이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내 친구들이 그랬듯이, 같이 마음 아파하다가도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을 때 웃기도 한다. 원래 그런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문득 문득 그들 걱정을 했다. 내 일상이 평범한 것에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나의 일상과 그들의 일상의 구분선은 불명확했다.내가 그의 심정을 100% 이해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다는 것. 그게 더 힘들었다.     


그동안 나는 그동안 누군가 늪에 빠져있으면 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해결책을 제시했다. 냉정해보여도 그게 진짜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나도 그 늪에 들어가서 같이 허우적거리거나 손을 잡고 침몰하는 기분을 함께 느끼는게 맞는건지. '힘내'라는 말도 할 수 없다. 무얼 위해 힘을 내고 힘을 내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힘내'란 말은 무책임해보일 뿐이다.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하지만 내가 늪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 하든, 같이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든. 그 진심은 그 친구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내가 밀어내던 친구들은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줬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나를 도우려 했다.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친구는 그 친구대로 미안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고등학생 때 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전학을 가서 멀리 살고 있던 터라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그 일은 그 친구에 대한 원죄로 남았다. 이후 미안한 마음 때문에 나는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 대학에 가고 각자의 생활을 했다. 가끔 친한 무리끼리 모일 때 그 친구의 얼굴을 봤지만, 나는 그 친구 옆자리에 앉기를 꺼렸다. 그렇게 멀어져만 갔다. 내가 미안해하는 만큼 그 친구가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거란걸 안다. 하지만 지례 겁먹고 미안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해 친구를 잃었다.      


이제는 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진심을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그게 꼭 직접적인 도움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상대방은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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