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하고 싶다, 내 팔자니까.

일복이 많다... 득일까 실일까?

by 근노보

난 사주팔자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래서, 걱정이 없었다.

아래층 할머니께 아이를 봐주겠단 답변을 듣는 순간까지도,
내 처지는 돌아갈 회사가 없는 사실상의 백수였다.
그럼에도 취직에 대한 불안함은 없다.

내 사주엔 늘 ‘평생 일할 팔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 말이 서운했다.

"왜 전 누구처럼 편히 살 팔자가 아닐까요? 어떻게 해야 일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그 팔자가 오히려 나를 일으킨다.

나는 '어디서든' 다시 일할 수 있다.

예전엔 틀렸지만, 이제는 맞다.


애초에 복직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육아에게 쫓겼다.

마치 처음부터 직장이 없던 사람처럼, 머릿속은 온통 육아뿐이었다.

때문에 복직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상무님께 무급휴직 전환까지 배려받아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내가 없는 동안 자리를 대신한 임시직무자가 마음에 걸린다.

임시직무자도 이쯤 되면 정규직 전환을 내심 기대하고 있을 텐데 일방적으로 빼앗는 듯한 불편함이 있다.
나의 쫓기는 마음에 그 사람의 노고를 얹어 생각하면, ‘복직’이란 말을 꺼내긴 어렵겠다.


회사를 원망하지도,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든 조직에 조용히 작별 인사를 전했다.

마치 라라랜드의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헤어진 것처럼,

각자 응원하지만, 함께하지는 못하는 길.

(회장님,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늘 건승하십시오.)


그랬던 나다.

그래놓고 지금.

육아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은 우리 부부를 출근길로 정신없이 내몰았고,

급기야 시터 고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우우웅- , 우우우웅-.


휴대전화 화면에 내가 육아휴직 중인지 전혀 모를, 3년 전 업무관계자의 이름이 떴다.

"아직 거기 계세요? 이직할 때 됐잖아요?"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을 팔자 말고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믿고 보는 사주팔자 아니겠는가!


해당 업무관계자가 주선해 준 회사는 무려 편도 9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오히려 좋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왕복이면 하루 3시간이나 나만을 위해 쓸 수 있겠다.


아니다. 멀면 멀수록 더 좋다.

그동안 못했던 책도 읽고, MZ들처럼 인스타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보고.

버스와 지하철 환승까지 더하면 세 번의 환승 코스가 있지만, 그럼에도 좋다.

이왕이면 계단 오르내리기로 건강까지 챙겨볼 생각이다.


배우자와의 '상의'라는 요식행위 끝에, 우린 3시간 출퇴근을 택했다.

이것은 '밭 맬래 애 볼래'의 21세기 버전이다.

애 보느니 3시간 출퇴근하겠습니다.


모든 게 정리되었다.

아이도 아래층 천사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됐다.

내가 다닐 회사도 생겼다.

이제 다시, 출근한다.

그게, 내 팔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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