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도 키오스크 도입이 시급하다.
요즘 식당들, 세상 효율적이다.
점원이 손님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줄 수고로움 없이,
손님이 테이블 키오스크로 주문부터 계산까지 앉은자리에서 모두 해결한다.
심지어 더치페이 옵션에는 먹은 메뉴별, 인원수별로 딱 나눌 수 있는 기능까지 있으니.
기가 막힐 정도로 참 깔끔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저렇게 놀랍도록 깔끔한 세상인데.
분리수거나 육아엔 왜 더치 OO가 도입되지 않은 것인가.
분리수거랑 육아를 정확히 갈라주는 앱 서비스 좀 누가 개발해 줄 수 없나?
가능하다면 육아도 옵션별로 나눠 결제(아님 결재?)가 가능하면 좋겠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 되긴 어렵겠지.
요즘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부부는 요새 흔히 이혼소송도 엑셀표로 한다는 mz 세대 부부에 속한다.(나이는 mz가 아니란게 서글프다만..)
생활비 명목으 공동 통장을 만들어 반반 입금하고, 그곳에서 지출한다.
양가 명절, 생신 용돈은 생활비 외 각자 하고 싶은 만큼 '알아서' 드리고, 서로 액수를 묻지도 않는다.
언젠가 어느 부장님께서 우리 부부의 경제 운용 방식에 대해 내게 냉정하다 하셨지만, 우린 그게 아니다.
각자가 허투루 하지 않을 사람들이란 믿음이 기저에 있다.
그렇게 해도 전혀 문제없는 우리였었다.
그렇게 문제없던 우리에게 부모란 Role 하나 추가된 것 뿐인데.
그 역할이 그간 평화롭던 집안 공기의 흐름을 바꿨다.
배우자는 교대근무자이고, 나는 주간근무자이다.
때문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해서 집에 없을 시간 동안의 살림은 '자연스레' 배우자가 도맡았다.
반면 그에 상응하는 나의 역할은
-. 주중 퇴근 후 육아 전담과
-. 주말 육아 전담이었다.
표면상으론 제법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근 들어 자꾸 아규가 생긴다.
서로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나 둘 다 속으로 불만이 누적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퇴근한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설거지가 쌓여있고 배우자는 아이 옆에서 지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난 하루 종일 일하다 지옥철 인파에 시달리다 겨우 왔어. 당신은 오늘 아이 등원 후에 내내 혼자 있다가 하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러나 아마도 동시에—
배우자는 동상이몽으로 이러지 않았을까?
‘나는 하루 종일 어질러진 집 청소와 빨래에, 심지어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까지 맞춰 다 끝냈는데, 당신은 퇴근하고 잠깐 애 봤다고 피곤하다고 해?’
가령 이런 지점에서 육아와 살림에 더치OO 방식 적용이 어렵겠다.
우리는 서로가 ‘열심히 하고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서로가 피곤하단 사실은 알면서도 그 피로의 무게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
누가 더 고생했냐는 싸움이 아니라, 왜 나의 고생을 평가절하하는지에 대한 서운함이다.
분리수거는 똑 떨어지게 나눌 수 있다.
(상시) 부피가 큰 플라스틱은 나 vs. 종이와 비닐은 너
(수시) 무게가 있는 유리류는 누가 vs. 소리가 요란한 캔류는 다른 누가
아닌가? 택배박스가 잦으니까 택배박스를 기준해야 하나?
아닌가? 배우자는 플라스틱에 있는 비닐을 떼지 않으니 플라스틱과 비닐을 내가 해야 하나?
......
........
됐다. 애석하게도 분리수거조차 반반을 못 나누면서, 육아를 부피와 무게로 어찌 나누랴.
이따금 상상해 본다.
육아에도 바코드 태깅 기능이 있어서 -
얼마나 안았고, 몇 번 기저귀 갈았고, 몇 번 울음 달랬는지 다 기록되고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긴. 그런 날이 오면,
우리는 결국 기록을 놓고 싸우기 밖에 더 하겠나?
안 볼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특별히' 오늘은 무게 따지지 않고, 내가 분리수거해 준다.
분리수거든 육아든, 바코드도 없고 계산도 못 하는데 뭐.
적당히 털고 살자.
어차피 우린, 반반 못 하는 반반 부부니까.
그게,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