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불참 예정이며, 육아는 근무 중입니다.

누구의 사정도 아닌 나의 일상

by 근노보

회식 참석 여부는 상위자의 권유가 아닌,

아이의 눈물 또는 배우자의 불편한 심기로 결정된다.


오늘 저녁 회식은 나 없이 무사히 끝났다고 한다.
사정이 있어 빠진 건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일상 그 자체가 사정이었다.


사실 회식 참석 여부는 출근길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인기척에 깨더니, 눈물콧물 범벅으로 매달렸다.

회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상황이 이미 결론이라는 걸 알았다.


배우자도 ‘오늘만큼은 다녀오라’며 회식 승인을 해줬다.

그럼에도 나는 미혼과 비양육인 팀원들에게도 간식거리를 조공하며 양해를 구했다.

상무님께는 온몸으로 송구함을 표현했다.


모두 내가 결정한 일이고, 어느 누구도 날 질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왠지 억울하다.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내 헤어라인 M자 탈모는 오늘도 의지를 갖고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나만 후퇴하고 있다.


BC(Before Child) 시절, 나의 저녁 일상은 어떠했던가?

업무 특성상 업무 관계자들과의 저녁자리는 Human Network 확보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승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다음 이직 기회까지 엿볼 수도 있고, 내부에서 동향이 이러하더라 전할 체면도 생기고.


업무적 효용성을 떠나, 사실 그저 대화가 그리운 날도 있었다.
다른 어른과, 회사 밖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시간이.

그러나 이제 저녁 7시는 내게 술 약속보단 목욕물 온도를 맞추는 시간, 분위기 파악보단 ‘기저귀 파악’이 우선인 시간이다.

이게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그냥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책임지는 시간이다.

다만 가끔은
내 선택이었음에도 참 서운하다.

그리고 그런 서운함조차,
이젠 소중한 사람들에게조차 쉽게 말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돌아올 대답은 뻔하니까.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아요?”


회식이 끝났다는 단체 팀즈방을 확인한 뒤.
내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한 후-
조용히 혼자 맥주 한 캔을 땄다.

이것은 나의 신명나는 침묵의 회식이다.


오늘도 좋은 선택을 했다.
아이의 하루하루가 조금씩 자라나는 걸 보면,
그 어떤 술자리보다도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


그래서 오늘은 탈모 샴푸를 두 번 펌핑했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육아 근무에 출석할 예정이니까.


“회식 불참은 괜찮습니다. 육아 불참은 없으니까요.”

당신은 오늘 어디에 출석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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