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잔을 참아내든, 부재의 여파는 줄지 않더라.
며칠 전 대학 동기의 청첩장이 도착했다.
부모가 된 후 저녁 약속은, 협조 요청부터 해야 가능하다.
그날도, 반가운 마음에 눈칫밥 계산기를 돌렸다.
“밥만 간단히 먹고 올게. 2차 없어. 다 애 키우는 애들이라 오래 못 있어. 술은… 많, 많이 안 마셔.”
마지막 문장에서 톤이 살짝 내려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2차 없이 귀가했다.
게다가 자정 전에 들어왔으니, 나름의 신뢰는 지켜졌으리라.
다만 만취 직전이었던 상태가 행여나 얇아서 깨지기 쉬운 그 여린 신뢰를 흔들까 봐.
현관에서 욕실, 욕실에서 침실까지
주취자는 본능적으로 살금살금 기어 다녔다.
음소거 모드는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까지 이어졌고,
아파트 현관을 지나서야 겨우 숨을 소리내서 쉴 수 있었다.
다시 며칠 뒤, 정신없이 업무를 쳐내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ex-ex 직장에서 모셨던 대표님의 부친상.
핑계 댈 여지도 없는 사안이다.
다행히 장례식장이 회사 근처니 이동시간은 아꼈다는 생각과 함께 배우자에게 협조 요청서를 보냈다.
“다녀와.”
짧은 답이다.
그 뒤 숨은 마음은, 시의 여백처럼 의도적으로 남겨둔 신호임을 알고도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업무도 회식도 아닌, 어정쩡한 저녁 식사가 잡혔다.
하소연으로 시작된 자리였고, 빠지려면 빠질 수도 있었지만
나도 그 하소연의 한 축이라 차마 빠지겠다는 말을 못 했다.
단체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 다음 날 아침.
이번엔 배우자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것은 일종의 통보이자 경고였다.
지난주부터 어제까지, 세 번 연속은 좀 아닌 거 같아. 난 저녁 약속 하나 없잖아.
엄지손가락이 멈췄다.
맞는 말인데, 억울하다.
그 세 번의 약속은 전부 ‘어쩔 수 없는’ 자리였다.
때문에 합리적 이유에서의 부재였다 생각한다.
머리로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지난 주말의 나는 이성과 달리,
본능적 감성에 따라 부채감+눈칫밥 범벅의 하루였다.
스스로 주말 육아를 자처했고, 힘들걸 알지만 굳이 나서서 혼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입구부터 겁에 질려 몸부림치는 아이인걸 안다면. 병원을 혼자 다녀온 자체에 대한 노고를 치하받길 기대하며.
그랬던 난데.
그런 나에게 '너무하다'는 처분이 내려지다니..
배우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나 보다.
배우자는 단지 육아를 해야 할 시간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가보다.
그날 밤.
아이 옆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배우자의 등을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내가… 그렇게 자주 나갔나?”
배우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없는 배우자의 등이, 말보다 더 많은 걸 건넸다.
그리하여
나는 청첩장 → 부고 → 어쩌다 보니 생긴 회식이라는
어찌 보면 타당한(?) 순서로
육아공백의 주범이 되어 있었다.
술을 더 마실 수 있음에도 몇 잔을 참아내고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그 시간에 내가 없었다는 것 하나만 남았다.
워킹대디든 워킹맘이든,
이 삶은 이따금 얼핏 억울하고 약간 억지스러운 선택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어른이 된다는 일의 한 조각임을 체득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단조롭기까지한 일상에 발맞춰
다시 부모로, 배우자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예전 같았으면 억울했을 순간에도
이제는 잠시 멈춰 배우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세상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달라진 마음이
어제보단 조금 더 참을 줄 아는 나를 만든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
오늘도 속으로만 외친다.
“그래도… 딱 한 번쯤은, 회식 말고 회식 같은 약속도 좀 가면 안 되나?”
(오늘도 속으로만 외치는 중)
다음 편 예고 : “야근이 미덕이라셨지만, 전 육아가 있어 이만 총총.”
— 이번엔 회사에서 눈치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