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없는 야근과 육아 있는 퇴근 사이에서
"일이 많은건 알겠는데 나한테 충원을 말할게 아니라, 당신들 업무투여시간부터 늘려야지."
귀로 접수된 부사장님의 ‘지침’에, 머릿속으로 퇴근 시간을 가늠해 본다.
오늘도 내 퇴근 시각은 부사장님 눈치와 아이 눈물 사이에서 정해진다.
부사장님은 평소에도 ‘충성도는 퇴근 시간에서 갈린다’는 철학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분이다.
(부사장님. 지금 그 말씀 MZ세대는 좌시하지 않지 말입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MZ가 없는 우리 실은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우리 실엔 야근이 습관이 된 선배가 있다.
부사장님의 저녁 mate이자, 사무실에서 가장 오래 남는 사람.
그러나 실상은 단순하다.
집에 가면 학업에 예민한 딸, 학군지 라이딩과 주차난으로 지친 아내가 있다.
선배에게 집은 현관문 여닫는 소리마저 조심해야 하는 낯선 공간.
그래서 차라리 회사에서 혼자 게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도, 서면보고 대신 대면보고(와 식사 사이 어디쯤)를 택하고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선배와,
서면보고를 메일로 남기고 퇴근하는 내가 대비된다.
부사장님의 눈에는 아마 ‘충성스러운 선배’와 ‘책임감 없는 요즘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퇴근은 내게 또 다른 출근이다.
출근길엔 이미 졸린 아이를 달래고,
퇴근길엔 잠들기 전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기 위해 지하철에서 마음이 더 바빠진다.
아이가 깨어 있길 바라며 집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잠든 날엔 혼자 괜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껴안는다.
야근을 못해도, 나는 매일 누군가를 안는다.
오늘도 육아라는 일터로, 또 다른 출근을 한다.
심야 수당도, 칭찬도 없지만
그 시간엔 누구보다 충성스럽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퇴근한다.
누군가의 상사가 아닌, 누군가의 부모로.
오늘 저는 여기에 충성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충성하셨나요?
다음 편 예고 :
“로봇청소기는 샀고, 카드값은 내가 냈다.”
— 부사장님 야근 지침보다, 로봇청소기의 뽀독거림이 더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