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뻔했으나, 손걸레질한 듯한 바닥 덕분에 평화를 찾다.
"내 생일 선물로 로봇청소기 새로 사주라."
다음 달에 생일을 앞둔 배우자가 웬일로 생일선물을 먼저 요청했다.
"응? 지금 꺼 고장 났어?"
"최신형은 청소로 더러워진 걸레를 스스로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대. 손빨래 필요 없이, 물통만 교체하면 된대.
중간중간 물걸레질 하면서 걸레가 마르면 물도 다시 묻혀온대. 어떤 거냐면 이거 좀 봐봐. 블라블라"
배우자가 눈독 들인 건 우리 집에서 지금 쓰는 모델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었다.
걸레 세탁은 물론, 건조까지 알아서 척척—
신이 난 배우자는 영상까지 보여줬다만 내 눈엔 그저 가격만 보였다.
정가 1,390,000원.
세일기간 쿠폰에 카드할인 7%까지 먹이면 결제금액 단돈 1,034,160원 최저가란다.
솔직히 지르고 싶지 않은 가격이다.
공동계좌에 동일한 생활비를 각각 입금하는 우리 부부 수준으로는, 일시불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즉답하지 않고 생각해 보자 마무리했다.
사실 요즘 들어 부쩍 청소 문제로 아규가 있었다.
이럴 바엔 외주화를 하자고 청소 어플을 몇 개 가입해서 이용해 보았다.
의뢰 첫 화면에 뜨는 공지는 하나같이 '바닥 손걸레질'이 서비스 불가 범위였다.
거기까진 나도 인정한다.
다만 대안으로 스팀청소기를 사놨으니, 다른 건 안 하셔도 꼭 그것만은 돌려달라고 의뢰내역 상세페이지에 정성 들여 써두었겠만.
의뢰를 요청한 업체 담당자 모두 스팀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고 (빈집에서의) '청소완료'를 보내왔다.
나는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는 사람이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주문이 잘못 들어간 메뉴가 나와도 가급적 그냥 먹는 사람이다.
그래도. 도대체 이번엔 못 참겠다. 참다 참다 폭발했다.
마지막 업체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바닥청소로 스팀청소기만 돌려달라 한 건데.
그마저도 안 한 게 화가 나 컴플레인글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우자가 나를 말렸다.
"그냥 넘어가. 내가 할게"
배우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 '내가 할게'가 실현될 리 만무하다만,
설령 실현된다더라도 나에게 피곤을 어필할게 뻔히 보였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컴플레인을 계속 작성하고 있었는데,
배우자는 평소와 달리 나에게 언성을 높이며 남의 생계를 끊지 말라 했다.
......??
내가 지금 무고한 사람의 생계를 악의적으로 끊는 건가?
만일 내가 회사에서 무책임하게 일을 마쳤다면, 전무님은 나에게 생계를 끊으면 안 되니 잠자코 눈감아 주시려나?
이렇게 관용이 넘치는 나의 배우자, 너는 왜 나에게만 엄격하지?
내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요청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는데, 왜 나는 컴플레인을 하면 안 되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은 따발총으로 쏠 수 있다. (배우 김혜수님의 '쏠 수 있어' 짤을 붙였다고 상상해 주십시오.)
그러나 거기까지 했다.
더 나갔다간 다 큰 성인들 큰소리에 여린 아이가 놀랄 테니.
그 난리통이 지나고, 생일선물로 요구한 로봇청소기다.
하여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못한 건데.
딩동. ‘결제 완료’
....??
"세일기간 종료 전까지 결제해야 해서 미리 샀어. 이번 달 입금하면 됨."
배우자가 세일 기간을 핑계로.
돈을 결제할 내 컨펌도 없는데.
일단 샀단다.
당황됐고, 황당했다.
하지만 이미 산 걸 어쩌랴.
그동안 생활비 넣고 남은 용돈 모아둔 걸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될 것 같긴 하다만.....
그래 뭐. 몇 달 더 졸라매자.
싸우느니 그냥 입금했다.
그리고는 배우자 모르게(아니 알고 있었겠으나) 나 혼자 삐친 마음으로 지낸 지 며칠 지난 어느 퇴근 저녁.
세상에.
바닥이.
진짜.
뽀-득-뽀-드으으윽.
그날, 나는 알았다.
손걸레질 느낌이라는 게 기분을 이렇게까지 좋게 만들 줄이야.
그건 청소가 아니라… 기분 전환이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이게 뭐라고.
본인 생일 선물로 가족을 위한 가전을 사달란 사람에게.
내가 그깟 카드값 가지고 좀스러웠나 싶었다.
배우자는, 그걸 굳이 싸우느니
나를 위해, 아니 우리 가족을 위해 샀던 건지도 모른다.
괜히 미안하고.
괜히 고마웠다.
그래서 다음 날,
고맙다는 말 대신
청소기 물통을 내가 갈았다.
어쩌면,
그게 우리 집의 사랑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도.
로봇청소기가 바닥을 뽀득하게 만드는 동안,
덤으로 우리 마음까지 뽀드윽-하게 닦인다.
다음 편 예고 :
“‘아빠 힘내세요’는 양육자에게 국룰이자 빌보드 1위다.”
— 하루 종일 날린 파일과 원치 않은 야근, 그러나 집에선 아이의 한마디와 식은 밥상이 날 복구시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