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힘내세요’는 양육자에게 국룰이자 빌보드 1위다.

원드라이브는 리셋됐지만, 아이의 위로로 내 하루를 복구하다.

by 근노보

혹시 이 글에서 기시감을 느끼셨다면, 환영합니다. 그대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분이십니다.
느낌이 맞습니다. (지난주 연재북 설정을 실수해 다시 발행했습니다. 네… 제가 이렇습니다. 헤헤)”



아침부터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부터 지하철까지 바로 바로 대기 없이 탑승이었다.
심지어 지하철 열차에서는 내가 서자마자 앞에 앉아 있던 승객이 다음 역에서 내려, 덕분에 편하게 앉았다.


출근길부터 기분이 들떴다.
마치 오늘 아침은 나를 위해 깔끔하게 준비된 하루 같았다.
출근길 이 기세면 퇴근길 로또 각이다.’


회사에서는 보고서 초안도 술술 풀려서 ‘오늘은 정시 퇴근 쌉가능이다’ 싶었다.
심지어 회의에서 까다로운 실장님께 “좋은데?” 라는 칭찬까지 이어졌다.
이쯤 되면 내 하루는 그야말로 완벽한 골든데이였다.


그런데 역시.

내 인생에서 경솔과 과신은 대체로 화를 부른다.


괜히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팀워크를 챙기겠다고 원드라이브 공용폴더에서 작업하다가 변고가 닥쳤다.
하루 종일 공들여 쓴 파일이 spinoff라도 한 듯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거다.


“혹시, 자동 저장 설정해 두셨나요?”
전화기 너머 IT팀 직원이 물었고, 나는 할 말이 잃었다.


순간 머릿속이 리셋됐다.
책상 위 커피잔도, 손에 쥔 마우스도, 앞에서 야근하는 옆팀 선배 얼굴도 모조리 회색조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내 속도 모르고 본부장님이 덤덤하게 물었다.

그래도 백업은 있지?


그 말이 귀에 들어와 가슴까지 그대로 내리 꽂혔다.


애초에 평소 하던 대로 로컬 PC에 저장했으면 됐을 것을.

괜히 공유한답시고 멋있는 척하다가 스스로 말아먹다니.

그날 나는 고생을 사서 한다는 젊은이임을 몸소 증명해 냈다.


결국 다시. 처음부터. 오늘 안에.
칼퇴는 증발했고, 야근만 길게 늘어졌다.

지쳐 집에 도착했을 땐 저녁 10시가 넘어 있었다.
현관 앞에서 급 조심조심 문을 열었다.
아이랑 배우자 둘이 곯아떨어져 있을 테니.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서툰 걸음으로 와다다다 달려와 내 품에 쏘오오옥 안겼다.


순간, 하루의 피로가 한 방에 풀려나갔다.
밥과 국, 몇 가지 정갈한 반찬이 식은 채 있었지만,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배우자가 조용히 건넨 눈빛에는 “고생했어”가 담겨 있었다.
말 한마디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까지 뜨뜻-해진다.


그때 문득 오래전 회식 자리에서의 한 선배가 떠올랐다.
만취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자랑스럽게 내게 내밀었다. (난 요구하지 않았다.)
선배 딸이 불러준 '아빠 힘내세요' 영상이었다.


영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린 다 같이 ‘귀엽다’고 넘기며 잔을 마주했지만,

선배는 영상이 끝날 때까지 본인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귀엽긴 한데 처음 본 영상도 아니면서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저 선배 취했네.’


그랬던 내가.

오늘 현관 앞에서 아이의 작은 품에 녹아내리면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때 선배가 왜 그토록 벅차했는지.


지친 양육자에게
‘아빠 힘내세요’는 빌보드 1위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 원드라이브는 믿지 않겠다.
나의 진짜 자동 저장은, 현관 앞에서 달려오는 아이 품에 있다.



다음 편 예고 :

“장염, 죽일 놈”
— 노로·수족구·구내염… 육아 전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 그리고 매번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
“선생님, 등원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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