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종사자도 금융권처럼 고액 연봉 받아야 하는 이유

천사를 찾아 샤바 샤바샤바

by 근노보

평생 인터뷰이만 해봤지, 난생 인터뷰어는 처음이다.

막상 인터뷰어를 경험해 본 소회라면, 면접관도 생각보다 긴장되고 잘 보이고 싶은 건 매한가지란 점이다.

혹시나 내 아이를 맡기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분께 내가 밉보이면 안 된단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간 육아로 쫓겨 미뤄둔 집 정리 좀 하고,
도긴개긴 일지언정 아이 내복도 이왕이면 더 깔끔해 보이는 내복으로 갈아입히고.


이내 초인종과 함께 첫 번째 면접자가 도착했다.

대학생 딸과 근방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그녀는, 중년의 연세에 비해 꽤나 화려한 차림새였다.

좀처럼 대화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양손 중 세 손가락에 끼어진 알이 큰 반지와 주렁주렁한 팔찌가 나의 집중력을 방해했다.
무엇보다 아이 얼굴에 묻어나면 제법 잘 보일 법한 굵직한 펄 있는 화장까지.

이 분은 우리와 결이 조금 달랐다.


두 번째 면접자는 연락두절이다.

연락두절인 분도 인연은 아닌 듯하다.


세 번째 면접자는 중학생 아들의 등/하교 사이에 짬짬이 근무할 곳을 찾는 분이었다.

육아 유경험자로서의 선배미가 물씬 풍겨 마음에 들었다.

다만 본인 아들 등교 전엔 오실 수 없다며 출근시간이 09시 이후만 가능하니 서로 시간을 조율해 보자 했고,

우리에게 어필하고자 아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아본 경험을 토대로 우리 아이를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덧붙였다.

09시면 우리 부부 근무 시간과 맞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는 운동신경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다.
혼자 뛰어놀게 두다가 넘어지면 무릎 털어주는 정도의 또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찌나 쫄쫄쫄쫄보인지 걸음마도 18개월에나 뗀 아이라, 놀이터에서는 내내 손 잡아달라 하는 지경이다.

부모도 힘든데 하물며 남에게 부탁하기엔 송구하다.

아쉽지만 이 분과 함께하긴 어렵겠다.


그리고 마침내, 제발 이번엔 인연이길 바랐던 마지막 면접자.

그녀는 굽 높은 부츠 스타일의 신발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벗으며 동시에 첫 대화를 시작했다.

"어머어어어어어. 너구나아아아아. 예쁘게도 생겼네에에에에에에"

과했다. 부담스럽다.
아이는 그녀를 등지고 앉아 딸랑이 치발기를 자근자근 씹으며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으니, 예쁘고 말고를 떠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쁘게 생겼다라.... 그래 뭐. 아이 자체를 사랑스럽게 봐주려는 마음이겠지.

예정된 면접자 중 마지막 분이었기에, 어떻게든 Fit을 맞춰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너무나도 급했다.
대화 내내 넘치는 의욕으로 마음이 저만치 앞서고 있는 게 느껴져 점차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흠이 아니다. 우리와 맞지 않은 것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 집 근무 조건은 소일거리 용돈 규모로 작고 귀여운 수준인데, 그 정도로는 시터일을 주업으로 삼는 그녀의 직업관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란 우려가 들었다.
당장은 만족할 수 있어도 요새 유행하는 '지속가능'은 어려울 것이다.


당연한 이치다. 과거 직장인 시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직 생활이 짜증 나도 버텼던 건 월급 덕분이다.

비록 큰 차이가 아닐지언정, 조금이라도 처우가 더 높다면 이직의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던 나였다.

회사 업무는 자본주의 논리가 당연시된다.

그런데 유독 육아 종사자들에게만 ‘소명’이라는 이름의 사명감이 먼저 요구된다면, 그건 폭력일 수 있다.


우는 아이 달래는 게 얼마나 진땀 빼는 일인지 이젠 우리 부부도 해봐서 아니까.

'잠에 예민한 내 아이야. 얼른 네가 자야 어른들도 좀 쉬잖아. 졸리면 눈감고 자면 될 일을 왜 자꾸 칭얼대기만 하는 거야?' 신경질 나는 그 마음을 이제 나도 해봐서 알게 되었다.


부모가 되기 전, 사회면에서 접한 영유아 관련 사건·사고 뉴스는 막 넣은 티백처럼 아직 우러나지 않은 물 한 잔 같았다. 겉으로는 안타깝다 느꼈지만, 마음은 밍밍했다.

하지만 이제, 육아의 고충을 몸소 겪고 나니

그 뉴스들 속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조금은 그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낮잠 시간,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잠든 그 짧은 틈을 타
각 부모에게 보내는 키즈노트 알림장을 쓰고,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가능하다면 커피 한 잔과 의미 없는 SNS 스크롤로 지친 오전을 잠시라도 달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유독 낮잠을 ‘못’ 자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안’ 자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

혹은 선생님의 컨디션이 유난히 지친 어느 날,

기저귀를 막 뗀 아이가 연이어 소변 실수를 해서 씻기고 갈아입히고 이제 숨 좀 돌리려는 순간
다른 아이가 같은 실수를 한다면?

그렇지. 그때는 마음까지 지칠 법도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안타까운 사건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비보 속 부모들의 절망감이 이제는 온 마음으로, 우러나고 또 우러나 물러터진 티백처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속이 썩어 들어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책임과 신뢰가 요구되는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고액연봉이 당연하듯이,

육아종사자에게도 이성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수준의 높은 연봉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생겨버렸다.


어찌 됐건 우린 정치인이 아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일개 노동자이자 부모이니 이런 무거운 주제는 차치하고.

내 자리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자.

예민한 우리 아이를 봐주실 분에 대한 선명한 기준을 추가해 다시 구인을 시작해 보자.


1. (최선호) 생계형이 아닐 것.

2. 활발한 보육보다는 안전지향형으로.

3. (선택 가능하다면) 삶에 쫓기는 중년보다는 마음이 여유 있는 장년층으로.


취미로 육아 도와주실 천사 할머니를 찾습니다.



이전 03화아이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한 이유는 날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