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아이사랑 어플 깔고, 어린이집 대기 걸고.
유경험자의 말은 대부분 옳다.
특히 육아 쪽 조언은, 대체로 틀린 적이 없었다.
그 중 압도적 1위는 '조리원 천국'이다.
조리원에서의 육아는 일종의 호캉스 여행 프로그램이라면,
집에서의 육아는 자칫 나태할 뻔한 나란 녀석에게 신이 내린 정신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행복을 음미할 조그만 틈조차 없다.
분명 같은 아이인데, 조리원에서 잘 자던 아이는 도대체가 잠을 안 잤다. 내내 울었다.
배우자와 나는 밤새 쩔쩔매며 교대로 아이를 케어하느라 눈에 띄게 지쳐갔다.
우리 부부는 울다 지쳐 자는 아이와 함께, 아니 어떤 때는 아이보다 먼저 잠에 지쳐 기절하기 일쑤였다.
다 지난 지금에 와서 하나마나한 생각이지만,
그때 왜 우리는 TV의 관찰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연예인 부부처럼 마주 앉아 맥주 한 잔 부딪힐 여유가 없었을까. 아이가 안 자면 안 자는 대로 아기띠를 두르고서라도 고단한 서로를 격려했으면 좋았겠다.
그 시절 우리는 스스로를 FM 육아에 욱여넣기에 집착했다.
분리수면이니 수면교육이니 하겠답시고 부득부득 쫓아갔다.
아무도 주지 않는 스트레스를 사서 받았다.
온라인에서 이유식 만들기 ‘꿀팁’ 이 넘쳐났다.
다진 야채를 얼음 틀에 얼려 쟁여두면 그렇게 쉬울 수 없다 했다.
하지만 실상은 씻고 물기 닦아 다지데까지 하세월, 널브러진 주방 정리하는덴 한오백년쯤 걸렸다.
심지어 완제품을 사 먹이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그 야채들은 얼음틀 모양을 예쁘게 유지한 채 버려졌다.
결국 '꿀팁' 따위는 오히려 우리를 꿀꿀하게 했다.
식습관 형성의 정석은 '자기주도이유식' 이란다.
무지한 초보는 아이의 자기주도이유식과 함께 촉감놀이까지 가능하단 말에 쉽게 현혹됐다.
슴슴하게 만든 소면 국수에 잘게 자른 김을 솔솔 넣어 아이께서 스스로 드실 수 있게 대령했다가,
음식의 8할이 현란하게 뿌려지는 참사를 목격했다.
굳은 소면과 국물에 불어나 형체가 모호해진 김을 청소하는데 대략 한 시간 이상 소요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그 점심. 그 메뉴는 정말...
시간이 꽤 흘렀건만, 치우던 그 순간의 피로감은 지금도 또렷하다.
혹시 누가 자기주도이유식을 정의해보라 한다면,
그건 육아를 만만하게 본 초보에게
세상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를 신생아가 직접 멱살 잡고 알려주는 방식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
결국 우리 부부는 신생아 시절 육아 ‘전문’ 서적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가차 없이 모든 걸 실패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부부 한정이다.
어디선가 쉬운 분리수면, 자기주도이유식을 성공한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신입사원 때도 이렇게까지 어리버리 얼레벌레는 아니었는데.
지들이 낳은 저 자그마한 아이를, 쌍둥이도 아니고 고작 한 명 케어하는데 미숙했던 두 성인 초보는
괜스레 신경질만 늘어갔다.
물티슈로 바닥을 아무리 훔쳐도 사방에 흩뿌려진 말라 붙은 소면은 모아지지 않았다.
한 명은 아이를 씻기고, 다른 한 명은 무릎 꿇고 청소하느라 번거롭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이가 신났겠다' 또는 '소면은 물티슈 말고 마른 티슈가 낫나?' 정도의 대화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먹는 것보다 치우는 게 더 많은 게 정상이냐"
"나 즐겁자고 한 거냐, 아이를 위해 한 거지"
"다음부터 하지 마라"
소소한 대화거리를 쓸데없이 날 선 화법으로 대응했다.
서로를 향해 마치 다크템플러가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공격을 지속하듯이.
우리 부부는 그제야 알았다.
3년은 택도 없다.
아이의 정서를 위하여 만 3년을 가정 보육 했다간 편부모 가정이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월급날 통장에서 카드값 빠져나가기보다 빠른 속도로
어서어서 아이사랑 어플 깔고, 어린이집 대기 걸고.
이제 부모가 된 우리는 마침내 다시 직장인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