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모모랜드, 보아, 이용신, 크러쉬
최크롬 : 따끈따끈한 KOZ의 신인 아티스트이다. 데뷔 전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했던 ‘마지막’, ‘불면증(Feat. YAYYOUNG)’ 두 곡을 트랙리스트로 올렸다. 일단 전면에 내세운 ‘새벽 제세동’이라는 단어로 이미지와 콘셉트를 확실히 굳히고 가려는 모양이다. 다운의 보컬 스타일은 소년스럽게 정돈된 톤, 풍부한 성량, 그리고 유려한 그루브와 청량감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운의 이름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어렵지 않게 ‘새벽 감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약간의 편집을 거친 곡의 완성도 또한 매끄럽다. 통일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흡인력과 긴장 모두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의 가느다란 보컬 처리는 편안하며 ‘불면증’의 리드미컬한 훅은 매력적이다. 여유로움과 절절함의 공존, 그리고 타 R&B 가수들의 끈적함과 구분되는 담백한 매력이 다운의 가장 큰 무기이다. 추후 어반 스타일을 시도하더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아티스트.
호우 : 그룹 내의 재정비를 끝낸 모모랜드의 앨범은 새롭지도 않으며, 교과서처럼 과거 걸그룹의 길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뿜뿜’의 답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비슷한 구성과 독창성 없는 브라스, 그리고 스윙도 조금 떼어와 붙여놓는다. 기존의 곡들로 업어가려는지 ‘뽕필’도 그대로 빌려와 ‘모모랜드 리믹스’의 형태로 변질되었다. 기회마저 쉽게 놓치게 돼버린 걸그룹의 말로는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무민 : '겨울앨범'의 탈을 쓴 '토탈 패키지'를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타이틀곡 ‘Starry Night’은 19년 만에 첫 알앤비/발라드 계열의 타이틀곡이라는 점과 연말/겨울 시즌을 타겟으로 한 트랙이라는 포인트를 중심으로 홍보되어왔다. 하지만 이 '앨범'의 핵심적인 포인트는 '20년 차 베테랑 댄스가수' 보아의 관록과 '싱어송라이터' 보아의 감성이 이루는 하모니. 그리고 그 공통분모를 정확히 캐치하여 모든 트랙에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보컬'의 영민함이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가 장르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올라운더’임을 감안하더라도, 과거 보아의 앨범들은 유독 단일한 특징으로 구분 짓기 어려운 포괄적인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그의 음악에 일종의 유기성을 부여하기 시작한 모멘텀은 바로 보아의 '셀프 프로듀싱'이다. 정규 8집(2015.5) - 미니 1집(2018.2) - 정규 9집(2018.10)에 이어 이번 미니 2집(2019.12)에 이르기까지, 보아는 j-pop의 영향을 받은 특유의 캐치한 탑 라인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테마를 기반으로 한 작사법,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안정적인 보컬 운용력을 통해 본인의 음악적 세계관을 완성시켜왔다. 이러한 보아의 작법과 뮤지션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음악에 무게감을 덜어내고 힘을 뺐을 때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이번 앨범을 통해 '어른의 이지리스닝'을 들려주고 싶었다던 그의 목적을 완벽히 달성했다. 미니 2집 <Starry Night>에 수록된 6곡은 모두 이지리스닝 계열의 팝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뮤지션/프로듀서/송라이터로서의 복합적인 자아를 차근차근 정립해온 보아만의 고민과 그 흔적이 마침내 가장 어울리는 그릇에 담겨, 잔잔하지만 확실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호우 : TV에 앉아 투니버스에서 노래를 하는 ‘루나’를 기억한다면, 이용신이라는 이름이 꽤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00년대의 확실한 락 사운드를 선보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추억을 딛고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TV 앞에 모여보았던 20대의 감성과 성우의 앨범 발매 핵심이지 않을까.
하지만, 복고 앨범이나 추억으로 구축한 앨범이 그렇듯이, 대중성을 잡는 것은 꽤 어렵다. 특정 리스너들의 재미를 충족시켰지만, 기존 애니메이션의 작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멜로디의 구성과 어쿠스틱 버전도 예상에서 벗어나기엔 단조롭다. 성우와 애니메이션이라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꽤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시절 이용신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했던 노력과 기존의 목적만을 확실히 충족시켰기에 2019년 12월의 앨범으로 꼽기엔 충분하다.
무민 : 2014년, 정규 1집 <Crush On You>를 들고 등장한 보컬리스트이자 프로듀서 크러쉬는, PB R&B, 힙합, 뉴잭스윙 등 폭넓은 스타일의 11트랙을 ‘크러쉬’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 데뷔와 함께 본인의 음악적 필드를 이미 완성시켰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수월하고, 거침없어 보였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R&B/Soul 음반’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쥔 이 작품은 크러쉬의 눈부신 업적이자 넘어야 할 산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발매된 정규 2집 <From Midnight To Sunrise>는 5년 6개월이라는 1집과의 간극을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풀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음악적 성장’ 혹은 ‘영역의 확장’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세심한 고찰과 메시지를 그가 오랜 시간 동경해온 ‘90년대 R&B’라는 틀에 담아내며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청자와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완성하였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스토리텔링의 테마로 삼은 트랙 배치는 뚜렷한 기승전결과 따뜻한 드라마, 풍부한 코러스 라인, 섬세하게 펼쳐진 아날로그 감성의 악기 소스들을 두루 갖춘 수록곡들을 통해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스며들 새도 없이 숨 가쁘게 흘러가는 음악산업의 굴레 속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시간의 굴레 속에 이 앨범이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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