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시즌스 호텔 홍콩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싱글일 때는 호캉스를 좋아한 적도 있었다. 아마 <여행의 이유> 속 김영하 작가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만큼이나 나의 일상, 일부가 된
눈에 익어버린 가구들과 집.
머리스타일은 지겨우면 바꾸고 손발톱은 네일로 기분전환하면 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 일상의 배경이 되어주는 집과 가구들.
침대에 누워도 누운 자리에서 보이는 책상. 당장 일어나서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누워 있어도 눕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우리의 집.
어쩌면 집에서는 반복되는 매일의 과정 속 "쉼"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지에서의 "쉬다"와는 또 다른 차원인 건지도.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와 생기고 난 이후의 호캉스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짐을 꾸리고 푸는 일 온전히 나의 몫이니 평소에 하지 않아도 될 일 하나 더 는다는 생각에 귀찮기만 하더라.
또 아무리 1박 2일이더라도 가기 전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할 것 같고 화장실 청소도 왠지 해 놓고 가야 할 것 같고 돌아오면 빨래는 왜 그리 많이 쌓이는지.
달갑지만은 않았던 호캉스.
그러다 어찌어찌 이번 추석에는 슬기로운 이웃사촌들과 함께 호캉스! 눈 딱 감고 떠나보았다.
포시즌스 홍콩
Four Seasons Hotel Hong Kong
2005년 9월 오픈, 399개의 객실,
홍콩섬 센트럴 IFC와 연결
처음엔 너무 작아서 에이 뭐야~했던 4층 조식 식당. 결론은 작아서 더 좋았다.
가짓수는 적었지만 그만큼 엄선한 퀄리티의 메뉴만 선보이고 있어 하나같이 다 만족스러웠다.
또 인상적이었던 건 한 사람 한 사람 밀착 마크하며 음식 뜰 때마다 대신해 주시던 직원분들.
마스크 쓰신 나이 있는 직원분들이 손님 한 분 한 분 전담해 음식 풀 때마다 그릇 들고 직접 도와주시니 뭔가.. 내가 사람을 고용하는 입장에 있지 않아서 그런가 좀 부담스럽기도. (두 개 먹을 거 하나만 먹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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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바람도 함께 모인 사람들도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포시즌스 호텔에서의 호캉스.
비록 집으로 돌아온 후 몰려드는 피곤함에 실신하듯 쓰러지기도 했고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도 녹두전, 송편, 갈비찜도 없었으나
2020년 추석,
여느 해 추석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 될 것만 같은
벅차오름이 마음 가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