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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Nov 10. 2020

줄 서는 데 진심인 홍콩 사람들

센트럴 베이크하우스 오픈줄을 보고

20대 초반 유럽에서 살 때 일이다. 어느 날 선생님이 물었다.


네가 여기서 십 년, 이십 년 산 다 치자.

그럼 넌 스스로 이 곳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거 같니?”


내 대답은 아니요였고 옆에 있던 일본 친구는  그렇다였다.  몇십 년을 살아도 외모부터 확연히 다름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난 영원히 이방인일 것 같았다.

몇 년 전 일하다 만난 입양아 청년.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도,  입양지에서 삼십 년을 살았는데도 생물학적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왔을 때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거리에서 스치는 자기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컸다고 했다.

결국 그 친구는 한국으로 날아와 가로수길에 상점을 하나 열었는데 잘 되고 있는지. 만나지 못한 엄마와 닮았을 따뜻한 모국의 사람들이  그동안의 공백의 세월을 잘 채워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홍콩에서 N년차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가.  만약 누군가 그때 그 선생님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번 대답은 그럴지도 모르겠다...이다.
사실 홍콩에 살면서도 가끔 여기가 부산인지 헷갈린다.

그러다 얼마 전 Timeout 매거진에서 읽은  <당신이 찐 홍콩 사람이 되었다는 11가지 증거>를 보니 난 아직 홍콩 사람이 되려면 먼 거 같다.

그중 가장 어려운  하나,  서기.

홍콩 사람들은 어딜 가나 줄 서는 걸 참 잘한다. 버스 기다릴 때도 버스 번호별로 줄 서는 라인이 다 따로 그려져 있고 화장실도 그렇다. 무엇보다 세일할 때 줄은 어마어마하다. 혹시라도 잘 모르고 우연히 나갔다가 백화점 세일 기간과 겹친다면 그 일대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가장 놀라운 그들의 인내심은 
바로 새로운 레스토랑 오픈할    서기.

덥고 습한 홍콩 날씨 속에서도 두 시간 줄 서는 걸 마다하지 않는 홍콩 사람들.


쉑쉑도 파이브 가이즈 버거도 오픈 당시엔 기본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1년가량 지나면 이런 오픈빨은 잠잠해진다. 그러면 그제야 비로소 신상 맛집들 가 볼 용기가 생긴다.


지지난 일요일 센트럴 소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다 마주친 긴 줄. 처음엔 어디서 공짜로 뭐라도 주나 보다 했다.


자세히 보니 센트럴에 새롭게 오픈하는 베이크 하우스(Bake House) 옆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베이크 하우스는 1년 전쯤 완차이에 오픈했던 인기 만점의 베이커리. 한창 오픈빨로 유명할 때 친구랑 함께 가보자 말만 하다 금세 잊어버린 곳. 그래 새로운 빵집 알아봤자 살찌기밖에 더하겠어.


얼마 후 가 본 완차이 베이크하우스의 빵들


내려오는 길에도 줄은 그대로였다. 한창 더운 오후 2,3시였다. 대체 홍콩 사람들은 왜 그리도 새로운 곳에 열광하는 걸까..


왜 홍콩 사람들은 갓 오픈한 레스토랑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메뉴를 발견하는 데 몇 시간의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인가”


혹시라도 나만의 생각인가 싶었는데 그간 접한 홍콩의 식도락 매거진들, Time out, Sassy Hong Kong, Dimsumdaily, VogueHK 역시 하나같이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홍콩 사람들에게도 물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다소 진부했다. 그냥. 사진 찍어 인스타에 최초로 올리고 싶어서라고. 그건 필리핀 사람들, 태국 사람들에게도 들었던 대답이라 뭔가 속 시원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면 보일까. 제 3자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나름의 해답으로 결론 지을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몇 년을 더 살아도 도저히 신상 맛집 몇 시간의 줄서기는 자신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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