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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Nov 12. 2020

홍콩 사람인척 차찬탱 즐기기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는
홍콩 사람들의 아침,
차찬텡


홍콩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차찬텡(Cha Chaan Teng). 한마디로 차와 간단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홍콩 스타일 카페라고 할 수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도 홍콩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을 사수한다. 회사는 늦을지언정 아침은 포기할 수 없는지 당당하게 아홉 시 넘어 출근하는 지각자의 손에도 어김없이 들려있는 빵과 밀크티.


한 번은 홍콩 직원이 남편에게 물어봤단다. 왜 아침 안 드시냐고. 남편은 스무 살 이후부턴가.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이다. 아침도 안 먹고 빈 속을 커피와 담배로 채우는 남편을 보며 직원은 걱정스러운지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넸다고 한다.


“그러다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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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있는 차찬텡 집은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다. 어느 날 지인이 데려간 유명한 차찬텡 집. 오픈 시간에서 단 10분 늦었을 뿐인데 어느새 만석이다. 세수도 안 하고 달려온 보람도 없이.

Australia Dairy Company Instagram
가장 유명한 파인애플번 + 에그타르트 + 밀크티 조합
Kam Wah Cafe의 파인애플번
Mong Kee의 마카로니 숲

차찬텡은 보통 밀크티 + 간단한 서양식 토스트 or 콘지로 구성된다. 버터가 가운데 들어간 파인애플 번이나 프렌치토스트 혹은 마카로니 수프나 닭죽 같은 콘지도 인기이다.


한 번은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더니 나이 지긋하신 의사 왈, 마카로니 수프랑 콘지 많이 먹으라고. 홍콩에선 마카로니가 건강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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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 갔기에 한 자리가 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로. 그 자리엔 낯선 홍콩분이 합석했다.


합석은 기본인 홍콩의 레스토랑


이쯤 되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합석 문화.  임대료 비싼 홍콩에서 합석은 자연스러운 식당 문화이다.


낯선 이와 마주한 좁은 식탁.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접시에 코 박은 채 먹기만 하다간 체 할 것만 같았다.


여전히 어려운 그들의 문화. 이렇게 우두커니 모르는 사람들과 맞대고 앉아 다리 부딪혀 가며 먹어야 한다면 그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 이들에겐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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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찬텡 집 혹은 동네 딤섬집을 가면 테이블 위에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사발을 발견할 때가 있다.


식기를 세척하는
뜨거운 물 한 사발



홍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당연히 마시는 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었으니.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는 개인 접시나 식기를 소독하는 물이다.


혹시 없더라도 직원한테 요청하면 뜨거운 물 한 사발과 빈 사발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빈 사발에 대고 뜨거운 물로 식기를 쪼르륵 세척하면 된다.


가끔 낡은 수저나 그릇을 그냥 사용하기엔 찝찝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찻물 온도를 맞추기 위한 용도였다가 차츰 변형되었다고 하는데. 사스(SARS) 이후 더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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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찬텡 식당에서는 딤섬과 티를 즐길 수도 있다(얌차). 이때 혹시 차를 우리는 뜨거운 물이 더 필요하다면?


찻물이 떨어졌을 ,
뚜껑을 열어두거나 뒤집어놓기


애써 종업원을 소리 내 부를 필요 없다.


조용히 찻물 주전자의 뚜껑을 뒤집어 종업원이 지나다니는 쪽으로 잘 보이게 두면 끝! 뚜껑이 뒤집어 있는 주전자를 발견한 종업원은 조용히 가져가 물을 채워온다.


차는 보통 나이가 가장 어린 성인이 따라준다. 누군가 내 차를 따라준다면 손가락 세 개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감사의 표시를 전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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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접했던 홍콩의 차찬텡 문화.

허름한 외관에 아침부터 달콤한 빵과 더 단 밀크티 조합이라니 생각만 해도 별로였지만 다른 차원 너머의 홍콩을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분명 바쁜 거 같은데 기어코 자리를 기다려가며 한 접시 뚝뚝 해치우고 가는 그들. 오히려 우리의 수다가 그들의 아침을 방해하는 기분이었고 덩달아 빨리 먹고 일어나 어디론가 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차찬텡 식당이 그런 건 아니다.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에 여유롭게 티와 딤섬을 즐길 수 있는 차찬텡 식당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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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아침을 여행하는 재밌는 방법 중 하나로서 뻔한 호텔 조식 말고 차찬텡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홍콩 사람인척 현지인 인척 차찬텡 즐기기.

조산’을 외치며 들어가면서 인사도 해보고 ‘음 꺼이’를 건네며 낯선 이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뜨거운 물이 담긴 사발에 그릇과 수저도 헹궈내 보고. 하드코어 버전으로 토마토 국물에 흥건히 적셔있는 마카로니도 도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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