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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04. 2020

COVA 코바

라떼 한 잔 시켜놓고 라떼하는 이야기


고등학교 때 가끔 듣던 라디오가 있다.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빠에게 꼰대라고 하는 사람을 본 건. 그전까진 꼰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만약 회사에 돌아간다면 나 역시 자동 꼰대 등업 예정이다. 나이로도 밀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더 확실한 건, 가끔은 그렇게 라떼 시절 이야기가 하고 싶다.

홍콩에서 맛있는 케이크를 찾긴 쉽지 않다. 망고가 유명한 홍콩의 코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엔 난로가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난로.


선생님은 그 난로 위에다 매번 점심을 해 드셨다. 선생님들끼리 모여 김치찌개, 콩비지, 된장찌개 돌아가며 해 드셨던 것 같다.

선생님 이름은 원춘자.  

단발에 빨간 안경테가 아직도 선명하다. 점심시간 10분 전마다 나를 불러 심부름을 시키셨다. 두부 사 오라고.

당시에 선생님 심부름은 간택받은 자만의 특권이었다.
신나서 학교 후문을 뛰어 오르내리던 게 생생하다.

한 여름 어스름해질 저녁 무렵이면

아파트 단지로 소독차가 돌았다.


뿌연 연기를 꽁무니에서 내뿜으면 동네 아이들 모두 그 뒤를 졸졸 따랐다. 희한하게 그 냄새가 좋았다. 각종 화학약품 덩어리였을 그 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친구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아이에게 이 이야길 들려준다면 믿을 수 있을까.

선생님이 학생을 학교 밖으로 심부름시키고(그것도 겨우 8살을) 화학약품 소독약을 마시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말리지 않는 부모님들.

불과 한 세대 만에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얼마 전 언니들과 모인 자리에서의 일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아! 언니, 무슨 6,70년대 생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요?"

그런데... 아...
언니들은 70년대 생이셨다. 말실수 수습하느라 한참을 애먹었다.


유행어처럼 말하곤 한다.
‘무슨 쌍팔년도 시대도 아니고.’
사실 쌍팔년도 88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옛날 옛적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을 뿐이다.

60년대 미얀마보다도 GDP가 낮았던 우리나라.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G20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변한 건 GDP만이 아니었다. 민주화, 빈부격차부터 시작해서 세대 및 젠더 갈등 등 유럽 선진국이 200여 년에 걸쳐 겪은 사회문제를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는 동안 겪어내고 있다.

그러니 겨우 2,30년 전도
몇 백 년 전 까마득한 이야기로 들리나 보다.
 
2020년 급식이들에게 교실의 난로는
옛날 옛적 고리타분한 이야기.

밥 안 먹는 아이에게 너희 할아버지 때만 해도 먹을 게 없어 수돗물로 배 채우던 때가 있었다고 다그치지만 먹힐 리 만무하고 위 세대 어른들이 피 흘리며 투쟁한 민주화 사회는 단군 때부터 내려온 당연한 건 줄로만 안다.

나 역시 그랬다. 직접 대통령을 뽑고 가고 싶은 나라로 여행 떠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교양 과목  중 "한국 근현대사회"를 들으며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구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탈리안 식 커피와 케이크를 만날 수 있는 코바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1900년 대초.

영국에서 대학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딸이 똑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교수인 아버지조차도 버지니아 울프의  대학 입학을 가로막았다. 대신 가정교사를 붙여 주겠으니 공부는 계속하라고. 그런 시대였다.

당대 지성인이라는 교수조차도 남성만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잘못된 명제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조차 그 기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 선거하러 가는 딸을 막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대학에 가겠다는 아이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부모가 있을까?

너무나 당연해졌다.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열리지 않던 기회가 지금의 우리 모두에겐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종종 윗세대들이  피땀으로 일군 결실에 대한 감사함을 잊는다. 그러니 자꾸 나 때는 말이야~ 인트로가 시작되면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또 나오나 싶어 두렵기만 하다.


나이 들수록 입은 쉬이 닫히지 않더라. 입술 양옆에 하얀 백태가 낄 때까지 말씀의 끈을 놓지 않으시더라.  

근데 놀라운 건
말이 아니라 글로 접할 땐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

기브 미 초콜릿부터 처음 세계 여행이 자유화되던 시절, 누렇게 바랜 벽지에 붙은 전등 스위치 이야길 읽으면서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맞아, 그때 그랬지.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떠올라 옛날 사진첩을 뒤적여 보기도 했다.

말이란, 내뱉는 순간 상대방은 들어야 한다. 그게 윗사람이라면 더더욱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단 들어야 한다. 내 시간을 바치고 내 노력을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일이다.

재밌는 라떼 이야기라면 친히 들려주는 그 수고스러움에 감사하겠지만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에  내 금쪽같은 시간을 바쳐야 할 때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반면 글이란 내 의지로 내 시간을 들여 읽는 것이다. 싫으면 덮으면 그만, 나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글에서 푸는 라떼 이야긴 거부감이 들지 않나 보다.


_______



오늘 거울을 보는데 코털이 삐져나와 있다. 나이 먹으니 쓸데없는 코털만 기나 보다. 문득 예전에 코털이 삐져나온 채 라떼 이야길 하시던 고등학교 선배님들이 기억이 났다.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지는 그 말씀을 듣는데도 온 신경은 코털에 가 있었다. 코털 정리해 주고 싶다... 어떻게 좀 하고 싶다...

어느새 나도 그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내 이야기가 라떼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면 이젠 이렇게 생각해야지. 코털이 삐져나오는 나이에 하는 이야기는 라떼다. 그러니 나란 사람, 거기서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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