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해외 영화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님만큼이나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된 인물, 샤론 최. 놀라운 순발력과 재치로 기생충의 영예로운 오스카 수상 순간을 한층 더 빛내주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고백하건대 통번역을 한 번도 공부해 본 적 없는 영화학도라는 그보다 더 잘해낼 수 있었을 거 같진 않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2년 산 게 전부라는 샤론 최 님.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죽 다녔다고 한다. 굳이 가르자면 소위 국내파라 할 수 있다. 샤론 최 님의 유명세 덕분에 그가 중학교 때 다녔다고 소문난 대치동 영어학원은 레벨 테스트 대기만도 몇 달이나 밀려있을 정도라고 한다.
2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한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에 그리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을거다.
한국에서 이제 막 홍콩에 온 아이들만 봐도 귀가 트이는 데 1년, 말문이 터지는 데 2년, 최소 3년은 지나야 영어다운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걸 보면 샤론 최 님 역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를 놓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국내파인데 가능할까요?
아빠가 외교관이라서 혹은 주재원이라 외국에서의 오랜 학창 시절과 유창한 발음으로 중무장한 친구들만 갈 것 같은 통번역대학원.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주신다.
국내파인데 가능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가능하다. 우린 이미 두 언어 중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으니. 물론 가끔은 타일러나 샘 해밍턴이 나보다 한국말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지만.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정상급 통역사 중에는 대학 졸업 때까지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 없다는 분도 계시다. 그 외에도 대학교 때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나가셨다는 분들도 많고 주변의 동기와 선후배들을 봐도 해외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게다가 요즘엔 유튜브만 들어가도 해외 유명 토크쇼나 연설, 드라마 등 외국어 배울 수 있는 자료가 무궁무진하지 않나. 원서도 주문하면 단 며칠 만에 온다.
한국에만 살아도 해외에 온 것처럼 충분히 외국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반면 해외에 몇 년을 살아도 나같이 할 수 있는 광둥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해외 어학연수 가시는 분들께 어학원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학원으로 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연애는 아니더라도 원어민을 만나야 일단 언어가 는다. 어학원은 가봤자 원어민은 선생님 정도. 나머지는 나랑 실력도 처지도 비슷비슷한 외국 학생들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어학원 대신 요리든 연극이든 꽃꽂이든 학원을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부딪혀 가며 언어도 늘리고 뭔가라도 배워서 남겨오면 어떨까.
국내파의 강점
모국어와 B 언어(제1 외국어) 사이에서 통역을 하려면 두 언어를 비슷한 수준으로 구사하여야 한다. 한 언어가 너무 뛰어나다 해도 다른 언어 실력이 처지면 제대로 된 통역이 일어날 리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경우 대부분 고객은 한국 분들이다. B 언어를 한국어로 깔끔하게 통역하여 전달해야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아웃풋인 모국어가 엉망이라면 통역사를 고용하는 한국 고객의 입장에선 통역사에 대한 신뢰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졸업할 때 즈음 들어왔던 프랑스인 후배가 있었다. 프랑스인이니 프랑스어가 모국어, 한국어가 B 언어였다.
부러웠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세상.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원어민만의 악센트. 출발선에서부터 나보다 저만치 멀리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와 스터디를 한 달 정도 같이 했다. 그가 한국어를 불어로 통역할 땐 크리틱 할 게 전혀 없을 줄 알았다.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어 하는데 한국 사람인 내가 거기다 대고 무슨 지적질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한국어를 듣고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나오지 않은 그의 불어는 불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나의 한국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만큼 그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파의 한계
한계야 수없이 많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고. 또 사람에 따라 저마다 부딪히는 장벽도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 한해서 말해보자면,
외국어를 시험공부하듯 공부했다는 게 제일 아쉽다.
예를 들어 ‘다시’라는 한국어 단어를 들으면 순간적으로 ‘once again’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한국어 문장 속 ‘다시’는 ‘또 한 번’의 ‘again’보다는 ‘back’이 더 잘 어울릴 때가 많았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전화했다.’처럼.
단어를 외울 때 <A는 B라는 뜻>식으로 로 외우곤 했다. 물론 빠듯한 시간 내 최적의 효율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천히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놀면서 처음 접하는 단어를 한국어로 대치시켜 외우기 보다 자연스럽게 이미지나 상황으로 기억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도착하다’는 무조건 ‘arrive’?!
이렇게 "A는 영어로 B야."라고 외우기만 하다 보면 'get there' 나 'make it'으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arrive’는 어색해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상황별로 그려진 단어카드가 장시간에 걸쳐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으면 순발력이 성패를 가르는 통역의 순간에 보다 더 원문의 뉘앙스를 살린 통역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통역하고 돌아온 날이면 밤마다 수십 번은 날렸던 이불킥. 맨날 아쉽다. 경력이 쌓일수록 느는 건 실력이 아니라 뻔뻔함인 것 같기도.
***
어릴 때 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해외파들이 가지는 장점은 물론 크다. 그러나 그들도 깨지고 부서진다. 초등학교를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은 여전히 초등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어와 외국어의 틀을 깨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국내파, 해외파 가르는 게 요즘 시대에 의미가 있을까.
본인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얼마만큼 절실한가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홍콩에 처음 왔을 때 망한 통역사 커리어를 걷는구나 생각했다. 한불 통역사인 내가 홍콩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어설픈 영어만 사용하다 보니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 불어 실력은 졸업 이후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중이다.
그런 내게, 제일 어려운 게 바로 절실한 마음 만드는 일.
하려면 할 수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오늘 아침 확인한 번역 의뢰 메일.
아. 그냥 놀고 싶다.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인생의 시기는 대체 언제일까. 마음 편하게 주구장창 한도 끝도 없이 아무생각 없이 멍 때리며 놀고 싶다.
절실함이 다 뭔가.
그냥 지금 이 순간, 늘어져있던 주말을 보내고 맞은 월요일 아침 내 마음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