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니?
아직도 기억난다.
어릴 때 어른들이 단골로 묻던 이 질문.
지겹기도 하고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매번 난감했던.
중고등학교 땐 어른들이 듣기 좋아하는 모범답안으로
대충 골라 변호사나 교수쯤으로 둘러대곤 했다.
꿈이 대체 뭐길래.
어차피 대학도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 정한 뒤 거기에서 안전한 과 아무거나 지원하라고 할 거면서. 졸업하면 그저 돈 잘 버는 대기업 회사원이나 되면 좋아들 할 거면서 왜 그렇게 아이들의 꿈을 물어보던지.
아마 그들도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그 나이대 학생에게 물어볼 거리가 그것밖에 없었겠지.
어제 우연히 들었다.
어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본인의 꿈을 나이대별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적은 이야기가 라디오 방송을 탔단다. 몇 살에 정치인이 되고 또 몇 살에 장관을 하겠다는 야심 찬 인생 계획서였나 보다.
마침 그 라디오를 어느 장관의 보좌관이 듣게 되고 그 장관은 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을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단한 아이다.
열두 살이면 보통 게임 현질이나 좋아하는 축구 선수 경기 일정이나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본인이 뭘 원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 생생하게 적어 내려가다니!
장관이 아이를 만난 건 정치적 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목적이 어떻든 간에 아이는 분명히 그 날을 평생 기억할 거다.
살면서 실의에 빠지고 절망에 힘겨워할 때마다 그 기억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꿈의 무게 중심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스물넷이던가.
가장 친하던 친구, 해롱이가 미국으로 대학원 유학을 떠났다. 가기 전 친구들 네댓 명이 모두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인사동의 한 카페였다.
갑자기 편지지 여러 장과 펜을 꺼내는 해롱이.
시시껄렁한 농담과 연예인 이야기, 취업에 대한 하나마나한 걱정을 나누고 있던 우리에게 대뜸 편지지와 봉투, 펜을 내밀었다.
거기에다가 각자의 꿈을 적으란다. 다 적은 후 봉투를 잘 밀봉해서 두 명씩 짝 지어 그 편지를 바꿔 가지면 된다고 했다. 나중에 우리가 십 년 후 만났을 때 그 편지를 서로에게 돌려주자고.
으악, 오그라드는 거 딱 질색이야!
이런 걸 왜 해?
오그라드는 거 딱 질색이었다. 이런 걸 왜 하냐고. 너 방학 때 안 올 거냐고. 그냥 이야기나 하지 귀찮게 이게 다 뭐냐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예쁜 편지지들을 일일이 골라 왔을 해롱이 마음을 생각하니 또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모두가 조용히 찻집 한가운데에서 10년 후의 모습을 그리며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고등학생 때처럼 대충 아무거나 적고 말까 했지만 모두의 진지한 모습에 나도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속의 꿈을 적어 내려갔다.
다 쓰고 봉투를 밀봉한 다음 편지를 교환했다. 내 상대는 해롱이었다. 해롱이의 꿈은 내가 보관하고 내 꿈을 적은 편지는 해롱이가 가져갔다.
그리고서 해롱이는 미국으로 가고 난 취업을 했다. 취업 3년 차가 되니 회사일도 익숙해지고 집-회사 반복되는 루틴이 따분해졌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도 했다. 소꿉장난 같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보내고 다행히 임신도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선 그때 그 해롱이에게 건네 준 편지가 살아 숨 쉬었다. 그 편지에 적었던 내 십 년 후 꿈의 약속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하다가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다고 이 모든 걸 버려가며 다시 돌아가야 하나. 몇 년 전 그 편지지 한가운데쯤에 적었던 나와의 약속이 잊을만하면 떠올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 해댔다.
결국 어린 날에 내가 나에게 했던 약속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나는 멀쩡한 회사 때려치우고 다시 학생의 삶으로 돌아갔다.
안정된 직장, 당장 눈 앞에 놓인 육아 등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백 가지도 넘었지만 친구에게 건네 준 편지 속 다짐을 지키고 싶었다. 이루어주고만 싶었다. 그거 하나였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가 그 편지를 서로 돌려줄 때에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당당하고 싶었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리고 그 꿈을 소중히 보관해 왔을 해롱이에게.
아직도 꿈을 적는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그때 그 편지지 속에 적었던 꿈을 왜 무시하지 못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려 할 때마다 그 꿈이 날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었다. 그 꿈을 적은 글씨가 생생하게 떠올라 잠깐 다른 길을 갔을 때에도 곧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먼 훗날 이렇게 힘들었던 기억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던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홍콩에 온 이후로 해롱이와는 만나지 못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내가 잘 보관하고 있다. 여러 번의 이사 가운데서도 친구의 소중한 꿈을 혹시라도 내 부주의로 잃어버릴까 늘 제일 먼저 챙기곤 했다.
그 편지를 적은 지 이미 십 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개봉하지 않고 있다. 그때 난 국제회의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동시통역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적었다.
“가장 잘 나가는”에 이르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편지를 모두 모아 다 같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그때의 친구들 모두 다들 기다려주고 있을 것만 같다.
부디 편지를 열기 전에
그 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