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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Mar 12. 2021

꿈을 적는다는 건


꿈이 뭐니?



아직도 기억난다.

어릴 때 어른들이 단골로 묻던 이 질문.

지겹기도 하고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매번 난감했던.


중고등학교  어른들이 듣기 좋아하는 모범답안으로 

대충 골라 변호사나 교수쯤으로 둘러대곤 했다.


꿈이 대체 뭐길래.


어차피 대학도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 정한 뒤 거기에서 안전한 과 아무거나 지원하라고 할 거면서. 졸업하면 그저 돈 잘 버는 대기업 회사원이나 되면 좋아들 할 거면서 왜 그렇게 아이들의 꿈을 물어보던지.


아마 그들도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그 나이대 학생에게 물어볼 거리가 그것밖에 없었겠지.





어제 우연히 들었다.


어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본인의 꿈을 나이대별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적은 이야기가 라디오 방송을 탔단다. 몇 살에 정치인이 되고 또 몇 살에 장관을 하겠다는 야심 찬 인생 계획서였나 보다.


마침  라디오를 어느 장관의 보좌관이 듣게 되고  장관은 라디오  사연의 주인공을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단한 아이다.


열두 살이면 보통 게임 현질이나 좋아하는 축구 선수 경기 일정이나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본인이 뭘 원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 생생하게 적어 내려가다니!


장관이 아이를 만난  정치적 쇼라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목적이 어떻든 간에 아이는 분명히  날을 평생 기억할 거다.


살면서 실의에 빠지고 절망에 힘겨워할 때마다 그 기억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꿈의 무게 중심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스물넷이던가.


가장 친하던 친구, 해롱이가 미국으로 대학원 유학을 떠났다. 가기 전 친구들 네댓 명이 모두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인사동의 한 카페였다.


갑자기 편지지 여러 장과 펜을 꺼내는 해롱이.


시시껄렁한 농담과 연예인 이야기, 취업에 대한 하나마나한 걱정을 나누고 있던 우리에게 대뜸 편지지와 봉투, 펜을 내밀었다.


거기에다가 각자의 꿈을 적으란다.  적은  봉투를  밀봉해서  명씩  지어  편지를 바꿔 가지면 된다고 했다. 나중에 우리가    만났을   편지를 서로에게 돌려주자고.



으악, 오그라드는 거 딱 질색이야!
이런 걸 왜 해?



오그라드는   질색이었다. 이런   하냐고.  방학   올 거냐고. 그냥 이야기나 하지 귀찮게 이게  뭐냐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예쁜 편지지들을 일일이 골라 왔을 해롱이 마음을 생각하니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모두가 조용히 찻집 한가운데에서 10년 후의 모습을 그리며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고등학생 때처럼 대충 아무거나 적고 말까 했지만 모두의 진지한 모습에 나도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속의 꿈을 적어 내려갔다.


 쓰고 봉투를 밀봉한 다음 편지를 교환했다. 상대는 해롱이었다. 해롱이의 꿈은 내가 보관하고  꿈을 적은 편지는 해롱이가 가져갔다.




그리고서 해롱이는 미국으로 가고 난 취업을 했다. 취업 3년 차가 되니 회사일도 익숙해지고 집-회사 반복되는 루틴이 따분해졌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도 했다. 소꿉장난 같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보내고 다행히 임신도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선 그때 그 해롱이에게 건네 준 편지가 살아 숨 쉬었다. 그 편지에 적었던 내 십 년 후 꿈의 약속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하다가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다고 이 모든 걸 버려가며 다시 돌아가야 하나. 몇 년 전 그 편지지 한가운데쯤에 적었던 나와의 약속이 잊을만하면 떠올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 해댔다.


결국 어린 날에 내가 나에게 했던 약속을 외면할  없었던 나는 멀쩡한 회사 때려치우고 다시 학생의 삶으로 돌아갔다.


안정된 직장, 당장 눈 앞에 놓인 육아  하지 말아야  이유는  가지도 넘었지만 친구에게 건네  편지  다짐을 지키고 싶었다. 이루어주고만 싶었다. 그거 하나였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가  편지를 서로 돌려줄 때에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당당하고 싶었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리고  꿈을 소중히 보관해 왔을 해롱이에게.





아직도 꿈을 적는다는   그렇게 중요했는지 그때  편지지 속에 적었던 꿈을  무시하지 못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려  때마다  꿈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었다.  꿈을 적은 글씨가 생생하게 떠올라 잠깐 다른 길을 갔을 때에도  다시 돌아갈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먼 훗날 이렇게 힘들었던 기억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있을 거라고 믿을  있었던 구심점 되어 주었다.


홍콩에 온 이후로 해롱이와는 만나지 못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내가 잘 보관하고 있다. 여러 번의 이사 가운데서도 친구의 소중한 꿈을 혹시라도 내 부주의로 잃어버릴까 늘 제일 먼저 챙기곤 했다.


 편지를 적은 지 이미 십 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누구도 개봉하지 고 있다. 그때  국제회의에서 가장  나가는 동시통역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적었다.


가장  나가는”에 이르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편지를 모두 모아 다 같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끝난  아니라고 그때의 친구들 모두 다들 기다려주고 있을 것만 같다.


부디 편지를 열기 전에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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