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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Mar 26. 2021

내게는 너무 어려운 당신의 말

가끔 친구들이 묻는다. 가장 어려웠던 통역은 의료, 건축, 법률  어떤 분야였는지.  머리도 나쁜 네가 대체 연사가 하는 말을 어떻게  기억해서 통역하는 거냐고.

그때마다 생각해봤다.


언제가 제일 힘들었더라.
어느 때가 제일 난감했던가.



반갑다, 논리야



논리! 논리가 포인트다.

방금 내가 한 말도 까먹는 판국에 어떻게 남의 말을 일일이 다 기억해서 통역한단 말인가.


통역할  가장 중요한  연사의 말속에 흐르는 논리에 올라타는 것이다. 다행히 연사의 논리가 찰떡같이 이해되어 그다음 말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면  날의 통역은 비교적 순조롭게 끝을 맺는다.

반면 연사의 논리의 숲에서 혼자 헤매다 끝나는 경우 집에 돌아와서 샤워하다가도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내내 곱씹어 본다.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andersjilden / unsplash.com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할 때다. 우리 대표실로 시공사 대표가 연락도 없이 그것도 혼자 불쑥 찾아왔다. 나만큼이나 대표님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둘러 시공사 대표를 자리로 안내하며 하는 .



오늘 햇볕이 참 좋죠?



그랬다. 봄이  오고 있을 때였다. 회의실의 커다란 통창으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상대방 대표도 이내 그렇다며 볕이  따스하고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하루 종일   아래  있기만 해도 행복 호르몬이 샘솟을  같았다.

그때 별안간 이어지는 대표의 .
볕이 너무 좋아서 블라인드 좀 치겠다고. 

아니? 햇볕이 방금 좋다고 하셨는데  블라인드? 처음엔 잘못 들은  알았다. 그러나 대표님은 햇살이 좋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손수 여기저기 블라인드를 치고 계셨다.

대표님의 햇살이 좋다라는 말은 “눈부시다 다른 말이었던 거다. 혹은 “회의하는  방해가  만큼 지나치게 밝다라던가. 단순히 햇살이 좋으니  햇살 가능한 오래 쬐야지 하는  나의 논리였던 거다.

@ruanrichard / unsplash.com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상대방 여자 임원이 고까웠던 우리  상무님. 통역 시작  말씀하셨다.  여자는 남편이 고위 공무원이라 지금  자리에 오른 거다, 여자가  일을 잘할  있겠냐, 초장에 잡아야 한다 등등

... 통역 시작도 전에 맥이 빠졌다. 역시나 통역 내내 살벌하게 불꽃 튀기는 설전이 벌어졌다. 상무님의 막무가내 억지 논리의 인신공격을 통역하면서도 머릿속은 어지러웠고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결국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던 여자 임원분.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상대측에게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도 자체 필터를 거쳐야 하는지 들은 그대로 내뱉어야 하는지 괴로웠다.


연사의 말을 판단할 자격이 통역사에게 과연 있는 건지. 

 답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시어머니 통역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 많은 회사들에서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정도 일 하기도 한다.


첫날 앞에서 통역하다 보면 맞은편에서 ‘어디 한번 잘하나 보자’ 두 눈 부릅뜨고 팔짱 낀 채 듣고 서 계신 분들이 있다. 불어를 배웠거나 하실  있으신 능력자 분들이시다.

그중에서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찾아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 그래서 전국의 시어머님들에게 송구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표현한다. 시어머니 통역이라고.

부정적 태도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 앞에서 통역하는 .  초보 통역사에겐 쉽지 .  긴장되어 말이 꼬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어머니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즐겁게 일할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불어 실력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을 늘어놓고 나면
처음엔 어디 한번 할 테면 해봐라 하던 사람들도 이내 친근한 태도로 돌아선다. 차가왔던 경계의식 역시 쉽게 허물어진다.


@huntersrace / unsplash.com


통역사와 수행비서 사이


통역하다 보면 고객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팅룸에서 통역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외부 현장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붙어 있는 시간이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초반에는 친해지면  좋은   알았다. 그러나 이내 친해진 거리만큼이나 늘어나는 부탁들.

가장 많이 하는 부탁은 가방  들고 있어 달라고.   아니다. 가방이야 그까짓 거  개도   있다. 가끔은 통역 노트 테이킹으로 썼던 노트로 본인이 오늘  말을 정리해 달라고도 한다. 때로는 들고 있던 커피잔까지.



난 통역사인가,
수행비서인가.



수행비서가 싫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높으신 분들의 수행비서.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문제는 내가 그들의 수행비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친해진 고객들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탁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그분들의 가방을 들고 혹은 우산을 들고 옆에  있을 때마다 ‘ 이게 아닌데...’ 싶은 애매한 감정이 든다.

웃으며 거절하는 스킬,
그거 언제쯤이면 가질  있을까.



***



 적고 나니 남들  있는 직업적 고충, 괜히 어린아이 칭얼거리듯 불평만 늘어놓은  같아 찜찜하기도 하다. 당연히 좋은 분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넓은 세상만큼이나 마음 넓은 사람도 많았다.

어느 개그맨의 할머니 일화가 떠오른다. 매번 “죽어야지, 이제  만큼 살았으니 죽어야지하고 노상 말씀하시곤 하셨다는 그녀의 할머니.

어느  보니 아침마다 무언가를 중얼중얼 외고 계시더란다. 알고 봤더니 하나  셋넷, 숫자를 세고 계셨다고. 손자와 아들 며느리 앞에서 죽어야지 하고 말씀하시던 것과는 달리 열심히 치매를 예방하시려고 노력하시던 귀여운 할머니.

할머니의 "죽어야지" '괜히  나이까지 살아서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는  아닌지 미안하다' 다른 표현이셨을까. 아니면 오래 살고 싶다는 반어적 표현이셨을까.

나이가     들수록 그에 어울리는 지혜도 함께 쌓였으면 좋겠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있는 마음의 귀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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