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가까이하고 읽기에 빠져들었던 계기는 재밌는 책 한 권을 읽고 나서였다. 그전에도 가끔 서점에 들러 책을 사긴 했지만 그 책들을 다 읽었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더 오래전으로 흘러가 초등학교 때만이 유일하게 책을 좋아했던 시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책 읽기에 다시 재미를 붙여준 그 책을 잊을 수가 없다.
스물네, 다섯 때쯤 친척집에서 잠깐 신세를 진적이 있었는데, 친척 언니의 방에 커다란 책장 하나가 있었다. 천장 높이까지 닿는 큰 책장에는 책이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훑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꺼냈다 펼쳐보고 흥미가 없으면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다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아인 도대체 냄새라는 게 없어요."
이야기가 신선하고 흥미로워서 그 자리에 앉아 책의 삼분의 일 가량을 읽었다. 그러고는 잠깐 책을 덮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한 번에 다 읽기에 너무 재밌고 아까운 책을 만나 기분이 들떠있는 상태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하나를 그렇게 집중해서 읽은 건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다. 이틀 만에 향수를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내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많을 거라는 것과 독서라는 어마어마한 즐거움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는 것을.
그 후로는 부지런히 책을 읽어나가며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 뿌듯함이 오래가지 못했던 건 분명 읽었던 책인데 내용을 금방 까먹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기억에 오래 남게 읽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두세 달이 지난 후에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었고 그러면서 같은 책 읽기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같은 책을 두 번째 읽을 때는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새롭고 재미가 있었다.
책들이 쌓여가자 영화와 마찬가지로 계절마다 읽는 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번 새 책을 사는 대신 내 책장에서 책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특정 계절에 보면 더 분위기가 나는 영화처럼 책도 그런 식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책에도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 분위기에 잘 맞아떨어지는 날씨나 계절에 읽으면 희한하게 다음 계절이 왔을 때 같은 책이 또 보고 싶어 졌다.
이렇게, 보고 싶어서 혹은 재미가 있어서 읽었던 책들은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시야를 넓혀 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간혹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타인에게 함부로 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에게, 가끔은 가족들에게까지도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권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었다. 스스로를 더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틀렸다는 말보다는 다르다는 말을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었고, 피곤스러운 편견에서도 많이 벗어날 수가 있었다. 삶 안에 박힌 많은 편견들이 사라졌을 때 느꼈던 자유는 정말로 달콤함 그 자체였다.
다독가 혹은 책 수집가나 모든 종류의 책을 섭렵가능한 지식인은 아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