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한 번 걸어봤습니다. 장애물 하나 없는 넓은 공터였는데도 혹시 발에 무엇이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부딪히지는 않을까 겁을 먹게 되네요.
발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머릿속이 하얘졌고 제 걸음이 닿는 땅 외에는 모두 허공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기분. 이상한 짜릿함까지 느껴지는 낯설고 싫지 않는 기분이 자꾸만 도전을 하고 싶게 만들더라고요.
양팔을 벌리고 대각선을 가로지르면 끝에서 끝까지 제 걸음으로 백 걸음이 조금 넘는데, 그걸 몇 번이나 확인하고도 백 걸음을 채우지 못했답니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나아가도 오십 걸음 후로는 보폭이 좁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거든요.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남았는데 계속 눈을 뜨게 되네요. 뒤를 돌아보면 방향이 약간 빗나갔어도 잘 왔고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꼭 중간에 서서 열 걸음만 더 걸을걸 하고는 후회를 했답니다. 다시 눈을 감고 몇 걸음을 가면, 끝에 다다를수록 공터 앞 도로 위로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일까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곱 살 난 아이였다면 모두가 귀엽게 봐줬을 텐데 서른 넘어서 그런 행동을 하면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눈을 감고 걸으면서 어지러웠던 머리와 마음을 잠깐 비워냈습니다. 눈을 감고 걸을 때는 애쓰지 않아도 별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양팔을 벌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는 자유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눈을 감고 걸었다고 뭔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제 걸었던 길을 오늘은 뛰었다고 길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음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네요. 며칠 사라졌던 웃음을 다행히 되찾았습니다. :)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에 나오는 문장인데요. 바람, 자유 같은 단어를 쓰고 나니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봄날이 오면 겨울 떠나가듯 당연한 떠남을 가져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