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한낱 풋사랑에 불과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던 사랑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쩌다 한 번씩 떠오르는 것들도 다 잊고 싶을 정도로 그랬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야 그런 마음이 차차 흐려지고 다시 되돌아볼 여유가 생겨났다. 그냥 풋사랑 정도로, 아니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조각 한 개 만은 남기고 싶었다.
예쁘네.
바로 앞에서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새로 산 립스틱을 바르고 평소에 잘 바르지 않았던 마스카라를 했다. 공을 들여 손질한 단발머리는 더없이 단정하고 잘 어울렸다.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내숭을 떨었다. 예쁘다고 말하면 더 예뻐 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좋다고 하면 더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건 다 잊게 되었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지 그것만 궁금했다.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했고 거울을 보듯 행동을 같이 했다. 차도 한잔 안 마셔보고 왜 나를 좋아했느냐고 몇 번이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이보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가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 상대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미안하다는 건 그때마다 내가 항상 슬펐다는 뜻이었다.
연락이 닿았다 끊겼다 그랬다. 말없이 사라졌다 나타나도 말이 없고 그랬다. 모든 핑계에 미안하다는 말이 따라왔고, 고개는 끄덕여 보였지만 속으로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어떤 때를 떠올려보니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서툰 탓에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그 애 앞에선 울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흐지부지하다 끝내는 모른 척해버렸다. 자꾸만 나를 내가 아니게 만드는 상황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욕심도 부려봤다.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차라리 그 애가 와서 완벽한 배신을 저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서서는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후회를 하길 바랐다. 그렇게 그 애를 원망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비슷한 마음이 생겨났다.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나를 뒤덮는데도 그 애가 그리워서 눈에는 눈물이 고이곤 했다. 그 애를 만나기 전의 내가 그리워졌지만 거울을 보아도 그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괜찮아지고 나서야 그 애도 괜찮아졌다.
어쩌면 나는 정말 치사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내게 큰 잘못이 없다고 여겼지만 따져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먼저라는 그 어려운 순간을 한 번도 만들어 낸 적이 없었다. 애매한 마지막을 상대가 책임지게 내버려 두었다. 상대의 말에 반대하거나 못되게 굴지도 않았고, 대부분 일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인 수동적 사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