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할아버지는 훈장을 하나 받으셨습니다. 어린 아빠에게 아버지의 이름만 알아볼 수 있는 낯선 언어로 된 훈장증은 비록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모르더라도 꽤나 멋이 있었을 겁니다.
알지 못하는 어른이 면사무소에서 왔다며 훈장증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의심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앞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당연히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그게 일종의 사기라는 것을 알고는 어린 마음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아빠는 그 일을입에 올리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런저런 탓이야 했지만 스스로를 가장 탓하는 듯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줄곧 옛날이야기를 하시면서도 훈장에 대한 말을 하지않았던 건 아들의 미안함을 들추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해서 관련 기관에 문의를 해봤지만 메달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기에, 이를테면 주울 수도 있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속상하셨겠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그냥 잊고 사셨겠죠. 어쩌면 훈장 하나 빼앗긴 것은 그리 큰일이 아니라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시대를 보면 그랬을지도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비단 전쟁을 겪지 않아서 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좋은 시대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저는 89년생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고 합니다. 그 덕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옛날 감성에 젖는 것도, 최신 유행을 따르거나 새로운 기기에 적응하는 것에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지금의 나라와 삶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당연함 속에서 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북한 내부 주민과의 비밀 인터뷰'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는데요. (채널 BBC News 코리아)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폐쇄된 후로 북한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굶주리고 눈치 보고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차라리 전쟁이 나길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조금 섬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