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야기

by 샹송

나흘 전에 작은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둘째 날에 문상을 갔었는데요. 분향소에 가보니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와 같은 분향소라, 그때가 또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작은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정정하셨거든요. 올해 96세셨고 생전에 크게 아픈 곳은 없이 건강하셨습니다. 다만 총을 맞은 후유증이 심해서 고생을 하셨다고 하네요.


작은할아버지께서는 6.25 전쟁 후인가 토벌 작전에 나가셨다가 총을 맞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몰랐고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난 후인 것 같은데요. 두통이 심해 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머리에 총알이 박힌 걸 알았다고 합니다. 수술이 불가능해 제거하지는 못하셨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이후로 국가 유공자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나이가 드시면서 머리가 더 심하게 아프셨는데 진통제 먹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죽음 앞에서 삶은 한순간이고 죽음 또한 짧은 순간일 뿐이겠지요.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움직이도 못하는, 죽음을 기다리는 그때가 가장 길고 지난한 시간일 겁니다.


저는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봤다기보다는 들었다는 게 맞겠네요. 그날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에 엎드리고 누워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라 숙제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구슬픈 목소리로 잔잔하게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할머니는 숨을 굉장히 크고 가쁘게 내쉬었습니다. 그 힘겨운 숨소리에, 제 숨이 다 막힐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는 잊히지가 않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중풍에 걸려 누워계시다 제가 아홉 살인가 열 살 무렵 돌아가셨습니다. 언제 쓰러지셨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걷는 할머니의 모습은 한 장면밖에 없고 그마저도 가끔은 그냥 꿈인가 싶습니다.


누워만 계셨기에 식사를 하는 것도 용변을 보는 것도 자리에서 해결을 하셨습니다. 저는 자주 할머니의 저녁 식사를 먹여드렸는데요. 수저에 밥과 반찬을 올려 입에 넣어드리고 할머니가 다 씹어서 넘길 동안에 다시 밥과 반찬을 준비해 뒀다 또 입에 넣어드리고 그랬습니다. 특별히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한테는 조금 지루했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죠. 그래도 밥을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기에 식사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습니다.


또 저와 언니는 일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할머니가 소변을 볼 수 있게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사람이 곁에 없을 때는 작은 종을 흔들어서 부르고는 하셨는데 다른 방에 있다가도 종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매번 잘하다가도 한 번씩 틀어질 때가 있었는데, 사이좋게 번갈아 하면 좋은데 언니는 꼭 저를 더 부려먹으려고 했다니까요. 언니가 계속 안 가고 버티면 어쩔 수 없이 제가 몸을 일으키고는 했습니다.


할머니의 장례 내내 저는 슬픔도 모르고 조금 철없이 굴었습니다. 친척 어른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촌동생들과 과자를 사 먹고 오렌지맛이 나는 달짝지근한 탄산음료를 몇 번이고 컵에 부어 마시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려서 그랬던 건지 할머니에 대한 정이 없어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예뻐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삶을 마감하게 되면 더 이상 태어난 날을 기념해 주지는 않습니다. 죽은 날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셨지만 제게는 할머니만 너무 옛날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초상화로 놓여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죠. 할아버지 방에 가면 나란히 놓여있는 영정 사진 앞에서 저는 늘 할아버지에게만 인사를 건넵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사진 앞이지만 할머니에게 말을 거는 건 어색하거든요.


재작년에 할아버지를 화장하던 날, 할머니의 묘를 파고 뼈를 꺼내어 같이 화장을 했습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만에 갑갑한 무덤을 나와 향한 곳은 뜨거운 화장터였네요. 죽음은 결국 그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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