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인가, 어른들이 마시는 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커피를 타 먹어 본 일이 있었다. 찬물에 커피가루와 설탕만 넣고 휘저어 먹었던 그 맛은 쓰고도 어딘지 신맛이 났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아무리 휘저어도 섞이지 않던 찬물에 탄 커피와 같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결혼을 하고 난 직후부터 그 몇 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떠올릴 때마다 그게 내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생각해 본다. 유독 아들과 며느리에게 엄했던 시아버지와 병환에 있던 시어머니, 다섯이나 되는 심술궂은 시누이에 무뚝뚝한 남편. 시집살이의 고단함 때문인지 나와 언니는 때때로 엄마의 매선 눈빛이 더해진 모진 말을 들어야 했다. 오빠는 장남이라 귀한 대접을 받아 몰랐을 테고 언니와 나만 아는 서러움이었다.
다행인지 어릴 적에는 그 서러움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점점 커가면서 또렷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언니와 그 서러웠던 순간들을 나누고 나서야 그 당시의 나나 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의 상황이 이해가 갔기에 지금은 그저 추억처럼 떠올리는 일로 남겨두었다.
스무 살 후반을 향해가던 때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내가 입에 올렸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엄마에게 굉장히 낯설게 다가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 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그게 무슨 대수라는 듯 대꾸를 했다. '행복은 무슨. 그리고 이제까지 너 행복했잖아.'
엄마는 내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행복에 가까운 삶이 아니었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신의 삶에서 나를 너무 쉽게 분리시키는 것 같아 신기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당연하게 나의 행복을 말하지 못했을 거였다.
나는 엄마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건 엄마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과 같았다. 틀어진 부분이 어디인지, 언제부터였는지 알아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다. 엄마가 아빠나 특히 고모들에게 오래 전 당했던 설움에 대해 한 번은 따져 물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못하겠다면 나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끝은 언제나 해결할 수 없는 파국에 가 닿았다.
게다가 내가 아는 엄마라면 그런 상황을 원할 것 같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멋대로 엄마의 삶을 평가하고 바꾸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나의 삶이 행복했다고 단정 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더이상 엄마의 삶이 어떻기를 바라지 않겠다.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치 않는다 해도 그건 엄마의 삶이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모순 (양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