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나 자신은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그들은 내가 그걸 아프게 여기길 바랐었지. 어딜 가나,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다.
어째서 너는 불행해하지 않지? 어째서 그렇게 태연하고 덤덤하게 살 수가 있지? 너는 뒷산 오두막에서 살던 놈이 아니었던가? 네 아버지는 부랑자였잖아? 왜 너는 주눅 들지 않는 거지? 같은 질문들과 비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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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할 조건이 갖춰졌는데 어째서 불행하지 않은 거야,라는 폭력적인 질문. 그 질문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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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날 산을 내려왔던 기억.
겨울이 오면 읽는 이도우 님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문장들을 옮겨 적어 봤습니다. 이번해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책을 다 읽어버렸네요. 읽는 도중 유독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는데요, 지금까지는 큰 감흥 없이 지나쳤던 문장들이 와닿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저런 생각을 품었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저런 시선으로 날 보는 사람들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도 했던. 은섭은 다른 이들의 의도를 무시하고 지혜롭게 마음을 정리했네요.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불행한 사람이 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안 좋은 일을 겪고 있을 때 저는 좋아하는 것들도 다 외면해 버리는 안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다 무슨 소용일까? 그 일 하나에 매달려 온 신경을 집중해 놓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일만 해결이 되면 다시 기분도 좋아지고 웃을 수 있을 거야. 지금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아, 웃고 싶지도 않다고... 마치 저 문장 속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불행할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왜 불행해하지 않아? 웃지 말고 불행해하라고. 하는 그 말에 굴복하는 사람처럼요.
제게 벌어진 일과 별개로 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소하고 친숙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곁에 있으면 가능하고 비교하지 않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더 불행한 상황을 들먹이면서 위안 삼는 것은 크게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크기와 상관없이 힘들 때는 힘들어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내가 더 나은 상황이니까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억지입니다.
다른 이들이 날 어떻게 보든 그저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꺼내보고 지켜보고 웃어 보는 것이 제일 위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