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지 않는 그리움

by 샹송

요즘 저는 굉장히 게으르게 지냅니다. 씨가 게으르기 좋은 날 같아서 대놓고 게을러보자 하는 마음입니다. 방에 조명 하나 켜놓고 회색빛 추운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따끈한 방바닥에 누워서 어린 시절 봤었던 만화들을 죄다 보고 있는데요. 달려라 하니를 다 보고 천방지축 하니도 본 뒤에 지금은 영심이를 보고 있습니다. 아기공룡둘리는 몇 개월 전에 봤는데 또 보고 싶네요.


전 서울 태생은 아니라 느껴본 적은 없지만 80~90년대의 서울 분위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알록달록한 만화적인 색감 때문인지 만화 속 서울의 모습이라면 다시 가서 살아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탁 트인 시야와 맑은 하늘아래 단독주택이 들어서있는 동네 풍경이 정겹고 마음에 듭니다.


영심이 (유튜브 KBS 옛날티비)

요즘에는 제목만 검색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만화를 어린 시절에는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챙겨봤어야 해서 못 보고 놓친 적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원할 때마다 볼 수 있어서 편하고 너무 좋네요. 지금 이 상황을 다 알고 과거로 간다면 미래의 이런 편리함을 그리워하게 되겠죠.


그리움의 시간에 속하지 않는 것은 지금뿐이라서 자주 그리운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제 자신을 가장 많이 그리워한 것 같습니다. 나이를 계속 먹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언제든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늘 곁에 머물지만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니와 영심이와 둘리는 늘 같은 나이로 머물러 있어서 만화가 좋기도 합니다. 만화 속 인물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슬프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들이 나이를 먹고 낡고 희미해지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몇개쯤 있어야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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